[방민준의 골프세상] '흐트러진 체스판'이 돼버린 셰브론 챔피언십

[골프한국] 4월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우들랜즈의 더 클럽 앳 칼턴우즈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은 LPGA 역사, 아니 골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 좋은 의미가 아닌 골프의 품위를 여러 가지로 훼손한 대회로.
중계방송을 통해 대회를 지켜본 골프 팬들의 눈엔 이번 대회는 한 마디로 '흐트러진 체스판'이었다. 그것도 잡화점에 진열된 싸구려 물건들이 어지럽게 쏟아지듯 골프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골고루 일어났다. 골프의 품격과 신성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셰브론 챔피언십은 '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No one knows golf until they take off their gloves)'거나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Everything happens in golf)'는 불멸의 골프 격언을 디테일하게 증명하기는 했다.
셰브론 챔피언십이 그동안 골프 팬들이 보아 왔던 메이저 대회와 다른 점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우선 톱 클래스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와 치열한 선두 경쟁이 실종되었다. 선두그룹에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를 비롯해 상위권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LPGA투어 데뷔 1~3년 차 선수들이 선두 경쟁을 펼쳤다. 다크호스들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없지 않았지만 골프 팬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질 정도에는 못 미쳤다. 골프 팬들을 감동시킬 정도로 구도자 같은 자세로 고고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도, 갤러리들의 숨을 멎게 할 신기의 플레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비록 스코어는 좋지 않으나 품위를 지키며 골프 정신의 기본을 확연히 보여주는 선수도 찾을 수 없었다.
무려 5명이 연장전을 치르는 모습은 흐트러진 체스판이 된 이번 대회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다투어 신성한 왕좌에 달려드는 꼴이 된 연장전의 발단은 선수로서 용납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라운드 1타차 선두를 달리던 아리아 주타누간(29)이 18번 홀(파5)에서 상상할 수 없는 칩샷 실수가 없었다면 당연히 우승은 그의 차지였고 5명이 치르는 연장전도 없었을 것이다. 주타누간은 18번 홀에서 2온을 노렸는데 볼은 그린을 살짝 넘어 러프에 떨어졌다. 핀까지는 10m도 안 돼 어렵지 않게 핀에 붙여 버디를 챙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주타누간은 뒷땅을 쳤다. 공은 2~3cm 움직였다. 네 번째 웨지샷은 홀을 한참 지났고 결국 보기로 홀아웃했다.
주타누간으로 말하면 2015년 LPGA투어에 등단해 이듬해부터 2021년까지 메이저 2승을 포함해 12승을 거두었다. 파5홀에서 아이언 세컨샷으로 2온을 하는 장타자로 LPGA투어에선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런 선수가 10m도 안 되는 칩샷을 실수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5명이 나선 연장전에선 승리의 여신은 중국의 인뤄닝(22)의 손을 들어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과감하게 2온을 시도해 핀 3m 거리에 올려 이글 기회를 잡았고 일본의 사이고 마오(23)는 3온으로 1m도 채 안 되는 버디 기회를, 김효주는 2m 버디 기회를, 주타누간은 1.8m 버디 퍼팅을 남겨 2차 연장전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뤄닝의 이글 퍼팅은 내리막 경사를 타고 홀을 한참 지났고 김효주의 버디 퍼팅은 힘이 약했다. 이어진 인뤄닝의 버디 퍼팅마저 홀을 외면했고 주타누간의 버디 퍼팅도 홀을 돌고 나왔다.
4명이 버디 기회를 놓치는 걸 지켜본 사이고 마오는 짧은 버디 퍼팅을 성공, '호수의 여인'이 되었다. 2020년 프로로 전향, JLPGA투어에서 6승을 기록한 그는 2023년 LPGA Q시리즈 공동 2위로 2024시즌 LPGA투어 멤버십을 땄다.
연장전에서 다른 선수들이 2온을 시도하는데 아무 고민 없이 3온을 택한 김효주의 판단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 골프 팬으로선 유해란(24)의 부침이 특히 안타까웠다. 1라운드에서 7언더파로 공동 1위에 오른 유해란은 2라운드에서 2타를 잃어 공동 6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사이고 마오와 함께 공동 선두에 나서 LPGA투어 통산 3승을 메이저로 장식할 기회가 찾아왔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투지의 바닥을 보이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하면서 4타를 잃어 공동 6위에 만족해야 했다.
우승을 다퉈야 할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나 실력자 렉시 톰슨이 2언더파로 공동 14위에 머문 것도 대회 열기를 달구지 못하는 요인이 되었다.
한국 골프 팬으로선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이 간절한 전인지가 선두권에 나서보지도 못하고 공동 18위에 머물고 김아림(3오버파) 윤이나(5오버파)가 각각 공동 40위 공동 52위에 머물러 기대에 벗어났다. 그나마 고진영(5언더파)이 공동 6위. 최혜진(4언더파)이 공동 9위로 김효주와 함께 톱10에 들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는 그동안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에서 열렸으나 2022년부터 스폰서가 바뀌면서 대회 장소도 텍사스주 우들랜즈의 클럽 칼턴우즈로 바뀌었다.
이 대회의 뿌리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게이트 다이나 쇼어 챔피언십으로 시작됐는데 후원사인 콜게이트는 유명한 치약회사고 다이나 쇼어(Dinah Shore, 1902~1971)는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가수이자 영화배우의 이름이다. 열렬한 골프 애호가인 그녀는 미션힐스CC에 LPGA대회 유치에 성공했으나 첫 대회 개막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스폰서가 바뀌면서 이름도 나비스코 다이나 쇼어 챔피언십, 크래프트 나비스코 다이나 쇼어 챔피언십, ANA인스퍼레이션으로 변한 뒤 2022년부터 셰브론 챔피언십이 되었다.
스폰서와 대회 장소의 변경으로 '호수의 여인'을 탄생시킨 '포피스 폰드'도 전설 속으로 묻히게 됐다.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18번 홀 그린 옆 '포피스 폰드'에 뛰어드는 것은 1988년부터 이어진 전통이었다. 당시 32세의 에이미 앨코트(미국)가 우승의 감격에 캐디와 함께 연못으로 뛰어든 것이 시작이었다. 에이미 앨코트는 1975년 LPGA투어에 들어와 메이저 5승을 포함, LPGA투어 통산 29승을 거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2004년 박지은이 처음 이 연못에 뛰어드는 영예를 안았고 이후 유선영(2012년), 박인비(2013년), 유소연(2017년), 고진영(2019년), 그리고 이미림(2020년)까지 모두 6명이 호수에 뛰어들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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