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시보 시절 이재명 “벌 받을땐 벌 받아야” 청탁 거절
초등학교 성적표엔 “덤비는 성질”… 부당한 따귀 27대 맞고 고개 안숙여
초교 졸업후 6년동안 공장생활… “나이 속여 형들에 들켜 맞기도”
사법연수원땐 대법원장 반대 성명… “부자-기득권에 깊은 적개심 보여”
같은 교회 형수-장모가 소개 인연… 김혜경씨 만난지 일주일만에 청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
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시험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 왼쪽 손목이 프레스기에 눌렸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셋째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이 후보와 김 씨는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성남=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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