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것

이재훈 기자 2025. 4. 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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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11월6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비니초 리바를 꼭 끌어안고 있다. 바티칸뉴스 엑스(X) 갈무리

20대의 나는 종교에 배타적이었다. 종교는 사람을 현혹해 생각을 멈추게 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소외와 착취, 억압으로 고통받는 인민들이 종교에 의탁하기보다 고통의 근원이 되는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나 정치에 참여하길 바랐던 탓이다.

이런 견해는 차츰 바뀌고 있다. 정치인들이 소외와 착취, 억압을 없애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극단적으로 편을 갈라 증오하고 적대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시작됐다. 고난에 빠져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기댈 곳 없는 인민을 운동과 정치는 보듬지 못하는데, 종교는 언제나 두 팔 벌려 이들을 안아주고 있는 것 같아서다.

2013년 11월6일 바티칸에서 있었던 일은 중요한 사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성베드로 광장에서 신경섬유종으로 인해 수백 개의 혹으로 뒤덮인 비니초 리바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교황은 군중 속에 있던 리바를 부른 뒤 오랫동안 안아주면서 그렇게 했다. 리바는 40년 삶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은 부모 외에 교황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의 성인’이라는 뜻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렇게 평생 무슬림 여성, 이민자의 자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발을 씻어주며 종교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윤석열이 12·3 내란을 일으킨 뒤 수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뛰어나왔다. 광장을 이끈 건 단연 여성들이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들었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은박지를 뒤집어쓰고 밤샘 시위를 했으며, 남태령에서 서울로 진입하려는 트랙터 농민들을 저지하는 경찰버스를 뚫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하며 대통령이 된 윤석열과 윤석열을 낳은 불평등 구조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여성들은 윤석열의 선언과 달리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불평등한 임금을 받고, 경력 단절과 승진 차별을 겪었으며, 성적 대상화와 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 존엄성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다.

그런데 윤석열을 탄핵하고 열린 6·3 조기 대선에서 정작 여성이 삭제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예비 내각’이라는 싱크탱크의 주요 보직자 가운데 여성은 7.7%에 불과했다. 34개 분과위원회 가운데 여성 정책을 다루는 별도의 분과도 없다.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는 페미니즘을 “극단적”이라고 표현하는 퇴행을 보였고, 김문수 후보는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은 청년 정치인을 영입했으며, 한동훈 후보는 ‘비동의 강간죄’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그냥 이준석했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이런 모든 상황은 정치인들이 소외와 착취,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기보다 그저 상대를 억눌러 승리하는 것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인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기 하루 전 남긴 부활절 강론을 전한다.

“정치적 책임을 진 자리에 있는 세계 모든 이에게 호소한다. 타인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는 ‘공포의 논리’에 굴하지 마시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굶주림에 맞서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구상을 지원하라.”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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