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49> 금수(禽獸)보다 못한 인간 백태(百態)] “남의 은덕을 원한으로 갚는 자는 뱀이나 올빼미보다 못하다”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에 왕씨(王氏) 열녀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 위경유(衛敬瑜)를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잃고 과부가 됐다. 친정 가족이 재가하라고 핍박했지만, 끝까지 수절했다. 그녀의 집 처마 밑에는 한 쌍의 제비가 집을 지어 놓고 아침에 날아갔다가 저녁에 날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한 마리만 돌아왔다. 가엽게 여긴 왕씨는 그 다리에 실을 묶어 표시해 두고 다음 해에도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그 제비는 다리에 실이 묶인 채로 다시 왔다. 감동한 왕씨는 시를 지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나타냈다. “지난해에 짝 없이 가더니, 올봄에 여전히 홀로 돌아왔구나. 옛사람 은혜가 그리도 소중해, 차마 다시 둘이서 날지 못하네(昔年無偶去, 今春猶獨歸. 故人恩旣重, 不忍復雙飛).”
이 시는 ‘고연시(孤燕詩)’라는 제목으로 후대에 전해진다. 여기서 ‘고인(故人)’은 먼저 간 자신의 남편을 그리워하는 표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애절한 사연은 ‘남사(南史)’의 ‘효의전(孝義傳)’에 실려 있다. 그 뒤 이야기는 당의 이공좌(李公佐)에 의해 ‘연녀분기(燕女墳記)’로 부연(敷衍)됐다. 주인공은 기생 출신으로서 양가의 아낙이 된 요옥경(姚玉京)으로 바뀌고, 다음의 후일담도 더해졌다.
제비는 매년 가을에 남쪽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여전히 홀로 요옥경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요옥경이 병으로 죽었다. 이듬해 봄에 돌아온 제비는 요옥경이 보이지 않자, 하늘을 맴돌며 슬피 울었다. 집안사람이 제비를 향해 말했다. “옥경이는 죽었다. 성 남쪽에 무덤이 있다.” 그 말에 제비는 더욱 슬피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더니 마침내 무덤 위에서 죽었다.
금(金) 말기부터 원(元) 초기까지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원호문(元好問)은 젊은 시절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길을 떠난 그는 도중에 우연히 사냥꾼을 만나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냥꾼이 아침에 그물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아서 죽였다. 그물에서 빠져나간 한 마리가 슬피 울면서 하늘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밑으로 내려오더니 땅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 원호문은 가슴이 아파 기러기를 사서 묻어 주었다. 무덤 위에는 돌을 쌓아 표시해 두고 ‘안구(雁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모어아(摸魚兒)’ 곡조에 붙인 ‘안구사(雁丘詞)’를 지었다. “세상에 묻건대 정이란 무엇인지, 곧장 죽음까지도 허락하는구나(問世間, 情是何物, 直教生死相許)”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옛날이야기 중에는 동물에 관한 것이 많다. 개중에는 실화도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가 누군가에 의해 지어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설화(說話)다. 그러나 단지 재미만을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향해 경종(警鐘)을 울리고 가르침을 주기 위한 교재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
춘추(春秋)시대 수(隋)의 군주가 행차 도중 어느 언덕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뱀 한 마리를 만났다. 자세히 보니 가운데가 절단돼 거의 죽게 된 상태였다. 가여운 마음이 든 군주는 시종에게 상처를 봉합한 뒤 약을 발라주라고 명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뱀은 천천히 움직이더니 풀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 일로 인해 그곳은 ‘단사구(斷蛇邱)’로 불리게 됐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군주가 다시 그 단사구를 지나게 됐다. 그때 풀덤불 속에서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뱀은 물고 있던 구슬 하나를 군주 앞에 놓고 사라졌다. 지름이 한 치 정도 되는 순백색의 구슬은 밤에도 빛을 내뿜어 달빛처럼 실내를 밝혀주었다.
‘화씨지벽(和氏之璧)’과 함께 고대 중국에서 최고의 보배로 꼽히는 ‘수후지주(隋侯之珠)’에 얽힌 설화다. 이 구슬은 전국(戰國)시대에 나온 ‘묵자(墨子)’와 ‘장자(莊子)’에 그 이름이 실려서 전해지다가 뒤를 이은 많은 고전에 언급되면서 유명해졌다. 이를 동진(東晉)의 사학자 간보(干寶)가 전해지는 설화를 바탕으로 이와 같이 꾸며 ‘수신기(搜神記)’라는 지괴(志怪)소설에 실음으로써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됐다.
‘시경(詩經)’의 ‘노송(魯頌)’ 중 ‘반수(泮水)’ 편에는 다음 네 구절이 있다. “하늘 나는 저 올빼미, 반림에 모여들다. 나의 오디를 먹고 나서는, 나에게 좋은 소리 들려주네(翩彼飛鴞, 集於泮林. 食我桑椹, 懷我好音).”
원래 아름답지 못한 소리를 내는 올빼미지만, 내가 있는 반궁(泮宮)의 숲에서 내가 키운 뽕나무 열매를 먹고 평소와는 달리 고운 소리를 낸다는 말이다. 아무리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남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뜻이다.
또 북송(北宋) 초기에 나온 백과전서 ‘태평어람(太平御覽)’의 ‘보은(報恩)’ 항목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현령 벼슬을 하던 장희(張禧)가 관아에 있을 때 황새 한 마리가 뜰에 떨어져 내렸다. 날아가던 도중 사냥꾼이 쏜 화살을 맞았던 것이다. 불쌍히 여긴 장희는 감초탕으로 상처를 씻고 약을 발라준 뒤 열흘 남짓 정성껏 보살폈다. 황새는 상태가 좋아지자 날아갔다. 그 뒤 한 달이 지나서 황새가 다시 날아와 물고 있던 붉은 구슬 두 알을 뜰에 떨어뜨리고 돌아갔다.
당(唐) 후기의 뛰어난 정치가였던 이덕유(李德裕)는 ‘소인론(小人論)’이란 글에서 보통의 소인은 크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편벽되고 간사하며 반복무상해서 믿을 수 없는 것이 소인의 일반적인 행태이므로, 편벽되고 간사한 자는 멀리하고 반복무상한 자는 믿지 않으면 큰 탈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소인 중에서 특히 간교한 자는 그러한 본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남이 베푼 은덕을 원한으로 갚기(以怨報德)’ 때문에, 이를 미리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남의 은덕을 원한으로 갚는 자는 잘린 뱀에게도 멀리 못 미치고, 근본을 등지고 의로움을 잊는 자는 날아가는 올빼미에게도 멀리 못 미친다(以怨報德者, 不及傷蛇遠矣. 背本忘義者, 不及飛鴞遠矣)”고 통박했다.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옛날 중국에서 ‘구체불여(狗彘不如· 개돼지보다 못함)’니 ‘낭심구폐(狼心狗肺·늑대 심장에 개의 폐)’니 ‘의관금수(衣冠禽獸· 의관 갖춘 금수)’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니 하는 말이 만들어졌다.
춘추시대 송(宋)의 대부 화원(華元)이 장수가 되어 정(鄭)과 결전을 벌이기 직전 양을 잡아 장졸들을 먹였다. 그때 정작 자신의 마부 양짐(羊斟)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앙심을 품은 마부는 전투가 시작되자 “어제는 당신이 주인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이요”라며 적진을 향해 수레를 몰았다. 이로써 화원은 포로가 되고 싸움은 대패했다. 결국 송이 전차 100대와 말 400필을 주어 화원을 겨우 구출했다. 이를 두고 ‘춘추좌전(春秋左傳)’의 저자는 “양짐은 사람이 아니다. 그 사적 유감으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죽게 만들었다(羊斟非人也. 以其私憾, 敗國殄民)”고 꾸짖었다.
전국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산(中山)이란 소국의 군주가 신하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양고깃 국을 나누어주는데 사마자기(司馬子期)에게 차례가 돌아가지 않았다. 분노한 그가 초(楚)로 도망쳐 중산을 치도록 꼬드겼다. 졸지에 곤경에 처한 군주는 다른 신하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전국책(戰國策)’에 실려 있다.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이런 부류가 존재한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해관계로 작게는 은인을 배반하고 크게는 사회와 나라를 혼란케 하거나 패망의 지경으로 몰아가려는 자들이 적지 않다.
지난 몇 달간 우리 대중은 여러 특별한 일을 경험했다. 금수보다 못한 갖가지 인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독사와 전갈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류까지 간교하고 추악한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막중한 국가기관과 사회 공기(公器)의 요소요소에 그러한 인간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할 말을 잊었다. 우환의식(憂患意識)을 가진 인사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그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할 따름이다.
대중 속의 많은 이 또한 세상살이에서 때때로 이런 인간을 만나 분통 터지고 억울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에 정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모양이다. 필자도 그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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