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와 검찰 선배님 추종한 檢바라기 [視리즈]
권력자의 하수인과 개혁론 6편
국민적 개혁론 앞에 선 검찰 中①
사회 약자보다 권력자 좇은 檢
제 식구만 챙긴다는 비판 직면
그래서 더 위험한 검찰의 권세
# 검찰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당연히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국민이란 특정 권력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하지만 검찰은 권력자를 좇기 바빴고, 국민은 뒷전이었다. 돈도 배경도 없는 사람은 쥐잡듯 잡으면서도 '검사 출신 선배들' 앞에선 꼬리를 내리기 일쑤였다. '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이런 권세는 검사 출신이 '대통령직職'에 오르자 극에 달했다. 국가 기관의 요직엔 검사 출신들이 포진했다. 그 기관의 정체성 따윈 상관하지 않았다. 검사란 타이틀만 있으면 프리 패스였다. 권력자와 선배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검찰,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검찰을 이제 국민 옆으로 돌려놔야 하지 않을까. '권력자의 하수인과 개혁론 6편: 검찰 中-1편'이다.
우리는 '권력자의 하수인과 개혁론 5편: 검찰 上' 편에서 검찰의 예산사업(세금으로 진행하는 사업)들을 분석했다. 우리나라 검찰이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우린 검찰의 예산사업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 보호'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꿔 말하면 검찰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란 얘기다.
■ 권력자 옆 검찰 =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검찰이 지금껏 걸어온 행보를 보면 약자보다 권력자 옆에 서 있었다. 일례로 군사독재 정부(1961~1987년) 시절, 간첩이나 테러리스트 관련 사건 수사를 담당하던 공안부 검사들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중앙정보부(1961~1981년)나 국가안전기획부(1981~1999년)와 함께, 혹은 그 내부에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참고: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현재의 국가정보원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공안 사건을 조작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 바람에 숱한 청년과 재야인사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거나 죽음을 맞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의 억울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은폐ㆍ왜곡ㆍ축소한 사건도 적지 않았다.
공안부만이 아니다. 권력형 비리 사건이나 대형 부정부패 사건 등을 직접 수사했던 과거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도 비슷했다. '○○게이트'로 불리는 굵직한 비리 사건들을 파헤친 덕분에 '성역 없는 수사'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집권자의 뜻에 맞는 '맞춤형 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직 시절 "장관 20명과 검찰총장 1명을 안 바꾼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현재의 권력자'에게 검찰은 그만큼 쓸모가 있었고, 검찰 역시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검찰이 늘 현직 대통령과 가까웠던 건 아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선 꽤 거리가 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검찰을 권력자의 칼로 쓰는 걸 반대하면서 개혁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2003년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10년 후인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를 없앴지만, 완전한 폐지로 보긴 어려웠다. 그 역할을 곧바로 신설된 대검 반부패부와 기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2020년 7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생기면서 공식적인 고위공직자의 비리 사건 수사는 검찰의 손을 떠났다.
■ 제 식구 감싸기 구태 = 검찰이 권력자의 명만 받든 건 아니다. 자신들의 '선배들'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검사 출신 인사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갔다. 검찰의 권력 지향과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김학의 성접대 사건'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2013년 3월 15일 차관직에 임명되자마자, 경기도 인근의 별장에서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의혹 수준의 논란이 아니었다. 김 차관이 등장하는 성접대 동영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임명 6일 만에 차관직을 사퇴하고, 이후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도 당시 검찰은 "동영상 속 남성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2013년과 2014년 두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김 차관은 결국 풀려났다. 이를 두고 당시 여론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8년 4월 정권이 바뀌었고,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발족했다. 과거 검찰의 인권침해 사례나 검찰권을 남용한 사례를 규명하겠다는 게 진상조사단의 취지였는데, 그중 하나로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사건을 재조사했다. 결국 김 전 차관은 2019년 5월 구속됐다. 정권이 바뀌자 수사 내용이 180도 달라진 셈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바꾸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약자인 국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한 일이다. 김 전 차관 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3년 당시 별장에 있었던 여성은 "성접대가 아닌 성폭행"이었다면서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2019년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2020년 1월 또다시 여성의 발언에 신빙성이 없다면서 무혐의로 마무리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참고: 김 전 차관이 법적 책임을 졌는지는 이 기사에서 따지지 않았다. 다만, 결과는 언급하는 게 마땅해서 짧게 요약한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의 성접대를 인정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2심에선 뇌물수수 건으로만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3심에서 2심 유죄판결의 근거가 된 증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지고, 검사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파기환송됐다. 2022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2심의 판결을 뒤집어 김 전 차관의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 꺾이지 않은 검찰의 권세 = 이처럼 검찰은 지난 수십년간 비판을 받아왔다. '권력의 시녀' '제 식구 감싸기'는 이제 검찰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도 검찰의 권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되레 권력의 주체로 부상했다.
이는 법무부의 조직 구성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법무부 인원은 총 3만3888명이었다. 이 중 검사는 209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일반직 공무원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이후 총 16명의 법무부 장관 중 10명이 검사 출신이었다. 타당한 조직 구성인지 의문이다. 법무부의 가장 큰 역할이 교정시설(교도소) 운영이고, 보호관찰이나 출입국관리처럼 인권에 민감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법무부뿐만이 아니다. 검사 출신들은 정부 조직의 요직을 꿰차고 있다.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집권기엔 그들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 이야기는 '권력자의 하수인과 개혁론 7편: 검찰 中-2편'에서 이어가 보자.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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