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로 거슬러올라간 ‘대통령의 기억’ [편집국장의 편지]

이른 더위에 조문객들이 땀을 많이 흘렸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도 했다. 그해 5월 봉하마을은 봄 아닌 여름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의 얼굴이 땀과 빗물과 눈물로 얼룩졌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봉하마을 7일장을 취재했다. 기자들은 불청객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 검찰과 함께 언론도 노 전 대통령 죽음의 공범으로 비난받았다. 분노와 슬픔에 잠긴 조문객들로부터 기자들은 욕을 얻어먹거나 쫓겨나거나 생수병 물벼락을 맞았다.
숨죽여 눈치 보며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그래도 한 뼘 공간이 허용될 때가 있었다. 마을 공터에 차려진 천막 아래로 전국 곳곳에서 발송된 먹을거리가 속속 도착했다. 머뭇대는 기자들을 자원봉사자와 조문객들이 손짓으로 불렀다. 기자들은 천막 그늘 아래에서 굽실거리며 간식을 받아먹었다.
한 번은 시퍼런 수박 여러 통이 도착했다. 그해 첫 수박을 봉하마을에서 먹었다. 누군가 펼쳐놓은 대형 종량제 쓰레기봉투 위로 사람들 얼굴이 한데 모여 수박씨를 퉤퉤 번갈아가며 뱉었다. 그 모습에 묘한 슬픔과 연대감을 느꼈다. 수박씨 뱉는 사람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는지, 그들을 보는 내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는지 기억이 아리송하다.
봉하마을 마지막 조문객은 기자들이었다. 7일장 마지막 날 운구차가 빠져나간 마을에서 기자들은 수첩과 카메라를 내려놓고 야외 분향소 돗자리 위에 올라갔다. 단체로 엎드려 절을 하는데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어깨들이 들썩였다. 오래 갈아 신지 못한 양말들에서 나는 발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5월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장에서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경호원들로부터 ‘입틀막’을 당한 채 끌려나갔다. 이 전 대통령에게 “사죄하라”고 소리친 다음이었다. 5월27일 서울광장 주변에서 추모행사를 하려다 동료 의원들과 함께 전경들과 3시간 가까이 대치했던 당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이건 ‘국민장’이 아니라 ‘계엄장’이다”라고 말했다.
16년 전의 기억이 다시 소환된 건 검찰의 ‘문재인 전 대통령 뇌물 혐의 기소’ 보도자료 파일을 열어보고 나서다. 그 어떤 피의자보다 구체적으로 죄목을 ‘묘사’한 검찰의 문장들을 읽다 보니 2009년 5월 봉하마을 장례식장에서 상주로 머물던 ‘고인의 친구’ 문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훗날 조기 대선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고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앉힌 일, 그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입틀막’과 계엄을 자행하다 탄핵되어 다시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된 일련의 과정들도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대통령들의 말로를 두고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수동적인 프레임에 나는 반대한다. 비극들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일으킨 것이다.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누가 이 나라 ‘딥스테이트’인지를 잊지 말라는 듯 캐비닛 속에서 ‘픽(pick)’된 아이템이 공교롭게도 나타나준다. 다시 5월이다.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둔 2025년의 봄은 과거와 필히 달라야 한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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