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류희림의 ‘야반도주’

‘민원 사주’ 의혹을 받아온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일신상의 사유”라고 하지만 속내가 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류 위원장이 연루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 건을 최근 감사원으로 이첩하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본 것 아닌가.
류 위원장은 2023년 9월 가족·지인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등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겨냥해 민원을 넣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심위 직원이 권익위에 신고하면서 조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권익위와 경찰은 류 위원장 봐주기로 일관했다. 권익위는 사건을 방심위가 ‘셀프 조사’를 하도록 했고, 지난 2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결론을 냈다. 그사이 류 위원장은 보란 듯이 연임에 성공한 반면, 신고자들은 개인정보를 유출한 ‘범죄자’가 됐다. 류 위원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이대로 덮일 줄 알았던 사건을 되살려낸 건 방심위 간부의 폭로였다. 지난달 초 국회에서 한 간부가 류 위원장 동생의 민원 접수 사실을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처음엔 보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양심고백을 한 것이다. 류 위원장의 거짓말을 뒤엎는 결정타였다. 그는 “(거짓 증언으로) 양심의 가책과 심적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류 위원장에 맞서 싸우는 동료들을 보며 거짓을 바로잡을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방송 뉴스·프로그램을 심의·징계하는 방심위는 류 위원장 임기 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바이든-날리면’ 논란을 보도한 방송사들에 법정 제재를 내리는 등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을 위한 돌격대 역할을 자임했다. 그나마 방심위를 지켜낸 건 직원들이었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김준희 지부장은 “(류희림 사퇴를) ‘도주’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류 위원장이 야반도주하듯 사표를 던진다고 끝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생명인 방심위를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망가뜨린 그의 전횡에 법적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혹여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서 다른 인사로 교체하는 ‘알박기’를 노린 것이라면, 뜻을 접어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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