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물실험 폐지 수순…한국 과학자, 오가노이드로 감각신경회로 구현

박정연 기자 2025. 4.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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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일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만성통증 새 치료제 연구 이어갈 것"
김지일 박사후연구원이 실험기구를 들여다보고 있다. Sergiu Pasca Lab 제공

이달 초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단클론항체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안으로는 인공지능(AI) 분석법과 장기칩(Organ-on-a-chip),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를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장기칩과 오가노이드의 경우 인간 장기와 유사한 환경에서 약물의 독성과 효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동물실험보다 정확하다는 장점을 강조했다.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었다. 한국에선 유관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실험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과 동물자유연대, 동물해방물결 등 동물단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의 실험 동물 사용량은 240만 마리에서 450만 마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고 고통등급인 'E등급'에 해당하는 동물실험 비율도 2021년 전체 실험의 44.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유럽연합(EU)의 E등급 실험 비율은 9.2%에 불과하다.

4월 24일 '세계 실험동물의 날' 홍보물.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동물실험 축소는 세계 학계에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국인 과학자가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한 미국 연구에선 동물실험을 대체할 인간 기반 신경모델 개발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인간 세포로 구성된 감각신경 회로를 실험실 배양접시 위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구현된 감각신경 회로는 감각 자극이 말초에서 뇌까지 전달되는 신경 경로를 실제처럼 재현해 통증 질환 및 신경발달장애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9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 논문의 제1저자인 김지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은 최근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 특이적 반응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임상적으로 모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통증 신호 처리와 같은 복잡한 신경회로 작동 원리를 직접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향후 중독 위험이 없는 맞춤형 진통제 개발에도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 4개 오가노이드 이어붙인 '어셈블로이드', 400만 개 인간 세포 구현

4개의 오가노이드에서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을 촬영한 사진. 윗쪽부터 감각 오가노이드, 척수 오가노이드, 시상 오가노이드, 대뇌 오가노이드. 김지일 박사후연구원 제공

김 박사후연구원이 속한 세르지우 파스카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감각 정보를 상위 뇌영역으로 전달하는 ‘상행 감각 경로’의 네 가지 핵심 부위인 감각신경절, 척수, 시상, 체성감각 피질을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개발했다. 오가노이드들을 조합해 하나의 기능적 신경 회로인 ‘어셈블로이드’로 형성했다.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피부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전환한 후 각 부위의 특성에 맞게 분화시켜 제작됐다. 직경 2~3mm 수준의 이 오가노이드는 각각 약 100만 개의 세포를 포함하고 있다. 네 개의 오가노이드를 나란히 배치한 뒤 약 100일간 배양하면 약 400만 개 세포가 포함된 단일 어셈블로이드가 형성된다. 인간 뇌 전체 세포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양이지만 실제 상행 감각 경로의 기능을 구현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인간 신경계의 구조적, 기능적 특성을 직접 반영한 '살아있는 회로 모델'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의 통증 연구는 실험동물 모델에 의존해 왔지만 인간과 다른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반응으로 연구 결과의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며 “어셈블로이드는 인간 특이적 신경 반응을 실험실 내에서 직접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4개의 오가노이드를 이어붙인 어셈블로이드. 왼쪽부터 감각 오가노이드, 척수 오가노이드, 시상 오가노이드. 김지일 박사후연구원 제공

연구팀은 형성된 어셈블로이드를 '매운맛 성분'으로 잘 알려진 캡사이신으로 자극한 뒤 신경 자극이 척수, 시상, 대뇌피질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관찰했다. 관찰 결과 감각 자극은 말초 뉴런에서 시작돼 고차 뇌 영역까지 이동했다. 감각 자극의 자발적이고 동기화된 신호 전달 패턴도 함께 확인됐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감각 입력이 단일 세포 수준이 아닌 회로 전체 차원에서 처리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과"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한 말초 감각뉴런에 풍부한 나트륨 채널의 유전적 변형을 통해 감각 회로의 활동성을 조절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나트륨 채널은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단백질 통로다. 특히 통증 감지의 핵심 단백질로 확인된 'Nav1.7'의 나트륨 채널에 돌연변이를 유도했을 경우 회로의 신경 활동 빈도가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 반대로 이 채널을 비활성화했을 때는 회로 전체의 활동이 소멸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어셈블로이드는 통증 자체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 신호 전달 과정을 세포 및 회로 수준에서 정확히 모사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 "마약성 진통제 쓰이는 '만성통증' 새 치료제 개발로 이어갈 것"

세르지우 파스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Sergiu Pasca Lab 유튜브 캡처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의 대안을 제시한 것 외에도 의학계의 풀지 못한 숙제인 난치성 질환의 새로운 해법을 제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수많은 인구가 겪고 있는 만성 통증 질환의 치료 단서를 찾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성통증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겪고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현재 불가능하며 완화 치료가 이뤄진다.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지만 강한 의존성과 중독 위험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새로운 진통제 개발이 의학계의 주요 도전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어셈블로이드 기술은 중독성 없이 신경회로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며 “통증뿐만 아니라 자폐증과 같은 신경발달장애 연구로도 활용 범위를 넓히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에는압력, 온도, 가려움 등을 구분하는 다양한 세포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보다 정교한 회로 모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탠퍼드대는 어셈블로이드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출원 중이다. 김 박사후연구원과 파스카 교수 등이 공동 발명자로 등재됐다. 김 박사후연구원은 "박사과정동안 배운 유전자, 세포, 신경회로 메커니즘 기반의 신경과학과 현 연구실에서 배운 사람세포 기반의 오가노이드, 어셈블로이드 모델링을 융합해 신경 질환의 발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보다 개선된 치료법 개발을 연구하고 싶다"며 향후 포부를 밝혔다.

김지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Sergiu Pasca Lab 제공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86-025-08808-3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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