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 벌써 하루가 다 갔네?
남해에서 하루 24시간은 자기 의지를 가진 생물 같다. 하루가 나와 반려견 몽덕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저녁때 집에 패대기쳐놓는다. 몽덕이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곤다. ‘저렇게 돌아다니는데 왜 살이 안 빠지나.’ 개를 보며 생각하다 잠에 빨려 들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얼떨결에 얻은 실한 오이
책방을 열기 전, 전 지구를 향해 속으로 욕하며 책방 페인트칠을 하고 있을 때다. 아이들 방과 후 놀이 공간인 상상놀이터 선생님이 동네 사람들과 책방에 들렀다. “저쪽 마을에 괜찮은 월셋집이 나왔어. 보러 가자.” 선생님 친구 집인데 지금 집주인은 일 나가고 없지만 괜찮단다. 우르르 몰려간다. 집은 열려 있다. 2층을 훑어보고 나오는데 선생님이 이 집 마당 텃밭에서 오이를 따 나눠준다. 성인 한쪽 팔만 한 괴물 오이다. 이 집 개는 짖지도 않는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집 개 ‘밀’을 안다. 다리가 짧은 바둑이 스타일 ‘밀’은 탈출의 귀재, ‘유리겔라’다. ‘밀’이 곁엔 언뜻 보면 포메라니안을 닮은 ‘보리’(보리의 정식 이름은 ‘보리 합천 실버스타인’이다)가 있었는데 ‘보리’가 2024년 초가을 급사했다. 이후 ‘밀’의 방황은 더 심해졌다. ‘밀’은 ‘보리’의 영혼을 찾아다니는 걸까?
모르는 사람 집에서 엉겁결에 괴물 오이를 떠안고 책방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연어초밥을 먹으러 집으로 오란다. 이 아주머니는 휴가 온 사람들이 버리고 간 유기견 다섯 마리를 거두어 키운다. 매일 노을이 질 무렵이면, 오토바이를 탄 아주머니를 볼 수 있다. 오토바이로 윗마을까지 돌며 묶인 채 방치된 개들에게 밥과 물을 준다.
적색 벽돌로 지어 올린 3층 건물, 몇 년 전부터 영업하지 않는 여관으로 향하는데 우리 집 주인인 ‘신발달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잡채를 해놨으니 가져가요.” 나중에 들르겠다고 하고 여관 문을 여니, 아주머니가 키우는 개 다섯 중 첫째 ‘영희’, 흰색 몰티즈가 맹렬하게 짖더니 몽덕이 똥꼬 냄새를 맡는다. 아주머니 부엌 벽엔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 같은 영어 경구가 여럿 적혀 있다. “공부해야 치매 안 걸리지. 그리고 나, 개 안 좋아해. 안 좋아한다고! 그런데 너무 불쌍해! 물도 잘 안 주는 사람들도 있어. 어떤 묶어놓은 개를 봤는데,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핥아 먹더라고. 그 주인은 천벌을 받을 거야!” 어느 초여름날 오후,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인 우리는 함께 “천벌! 천벌! 천벌을 받을 거다”라며 그 개 주인을 저주했다.
연어초밥 얻어먹으며 보게 된 새·상괭이 사진
아주머니와 내가 ‘개 방치 및 학대 척결 국민연대 남해지부’를 결성하기 직전, 아주머니의 남편인 새박사님(69)이 베레모를 쓰고 연어초밥을 만든다.(박사 학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새박사님이라고 존경을 담아 부른다. 진짜 새 박사인 그의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남해가 고향인 새박사님은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했다. 여러 형편 탓에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원양어선을 20년 동안 탔다. “어느 날 갑판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어, 모이를 줬어.” 태평양, 새, 쪼그리고 앉아 새를 보는 청년을 상상하다 이상하게 애잔해졌는데 새박사님이 배에서 배운 실력으로 만든 초밥을 내온다. 46살에 배 타기를 그만둔 그는 그 뒤 남해의 새를 독학으로 탐구했다. 팔색조 알이 부화하는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팔색조는 전세계에 2400~1만 마리밖에 없는 거로 추정되거든요. 근데 남해에 1천 마리가 있어요. 남해 사람들이 억척스럽게 다랑논이며 밭을 파서 아이들을 가르쳤잖아. 지렁이들 살기 딱 좋거든. 그래서 팔색조가 모여요. 그런데 2016년엔 가뭄이 들어 지렁이가 드물었단 말이야. 그해에 내가 우리나라 최초로 작은 뱀을 잡아 아기들에게 먹이는 팔색조 사진을 찍었어요. 그때 어미 팔색조가 지친 걸 한눈에 알아보겠더라고요. 사진 볼래요?”
그렇게 해서 새박사님의 광활한 ‘새 파일’의 문이 열렸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순간의 붉은배새매, 아기들을 먹이는 돼지빠귀, 쏙독새, 어치, 멧새…. 세상에 이토록 많은 오리 종류가 있다는 데 어안이 벙벙하다 이 오리가 저 오리인가 싶을 즈음, 새박사님의 자랑, 비장의 보물, 상괭이 사진들로 가는 대문이 열렸다. 멸종위기종으로 삼천포, 남해 주변에 산다는 작은 돌고래 상괭이들이 볼록 튀어나온 이마 아래 동그란 눈웃음을 쳐댄다. “이 작은 상괭이 옆구리를 보라고요.” 갓 태어난 상괭이에게만 보이는 배냇주름이다. “여기가 상괭이 탄생지라는 거지.” 새박사님이 찍은 이 배냇주름 사진은 뉴스에 나왔단다. 상괭이들이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상괭이들이 물살을 가른다. 상괭이들이 지느러미로 손짓하고, 나는 그 손짓을 따라 잠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아 손가락에 굳은 페인트를 벗겨낸다. 그때 아주머니가 자존심을 살린 헤어스타일로 외출 준비를 한다. 팝송 수업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책방 문짝 반밖에 칠하지 못한 채 나는 한 손엔 괴물 오이를 들고, 한 손엔 뚱뚱한 개 몽덕이를 끌며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때 카톡이 울린다. 우리 집 주인 ‘신발달인’이다. “왜 잡채를 안 가져가?”
개를 산책시키다 갑자기 전화를 받아, 빵집 언니와 커피를 마시는데, 그 언니를 불쑥 찾아온 손님들까지 합류해, 엉겁결에 다 함께 어딘가로 가서 밥을 막 먹다가, 아차차, 벌써 저녁이네 싶은 그런 날엔 가끔, 나는 불안해진다. 이렇게 시간이 황무지에 굴러다니는 넝쿨처럼 가버려도 되는 걸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시간에 대한,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것 같아 조급해진다.
‘시간 관리’라는 허상
그러다가도 빵집 언니가 라면을 끓이니 오라는 카톡을 보내면 냉큼 몽덕이를 데리고 달려간다. 반백 년 고립 내공을 쌓아와 웬만한 고립엔 끄떡없다고 자위해왔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고립 훈련으로 덮어놨다고 믿었던 구멍은 실은 판자로 얼기설기 입구만 막아놓은 것이란 걸 말이다. 짠하도록 사회적인 동물인 사람의 마음속 그 구멍은 타인의 냄새, 목소리, 촉감의 엉김으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는 건 허상이고, 실은 나는 원래 시간에 휩쓸려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존재라는 걸 마음 깊숙이에서는 알기 때문이다. 빵집 언니가 끓인 라면에 김치를 얹으며 그 공허함을 메우는데, 그럴 때면 이렇게 황무지를 구르는 넝쿨처럼 엉킬 수 있다는 게 행운 같다.
글·사진 김소민 은모래마을책방 지기/희망제작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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