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 100주년, 광주 항일혁명가 김재명을 기억하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사진 속 청년의 눈빛은 깊었다. 굳게 다문 입은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옷깃에 붙은 한자 이름표가 없었다면 여느 청년의 증명사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25일 오후 광주 복합 문화예술공간 ‘아트스페이스 흥학관’에서는 전라도 출신 항일혁명가 김재명(1900∼1930)을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장재성기념사업회가 광복 80주년과 조선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재명의 행적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한겨레21’에 ‘임경석의 역사극장’ 칼럼을 게재하는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전남 항일혁명운동 내에서 김재명의 높은 위상을 설명했다.
임 교수는 그동안 광주로 알려졌던 김재명의 출신지부터 바로잡았다. 1928년 8월 경기도경찰부 취조기록에 ‘전남 광주부’라고 나오며 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이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김재명의 고향은 광주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 출생지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거문도) 서도리 장촌’이라는 것이다. 그가 훗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사용했던 가명 ‘음달’은 고향 마을 뒷산 이름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에도 김재명의 본적은 여수 거문도로 나온다.
김재명은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학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름이 처음 알려진 건 1923년이다. 김재명은 서북지방 수해민들을 돕기 위해 거문도에서 성금을 모았다. 이듬해 4월에는 서울에서 노농총동맹 집회금지 항의시위에 나서 주동자로 체포돼 10일간 구류처분을 받았다. 1924년 6월에는 휘문고보 동맹파업에 대한 교섭위원단 5명 중 한명으로 나섰고 한달 뒤 사회주의계열 사상단체 ‘건설사’ 간부로서 전남 신안 암태도 소작쟁의 조사원으로 활동했다.
1925년부터는 광주에서 활동했다. 9월 광주청년회 집행위원을 맡아 흥학관(일제강점기 광주 청년공간) 앞 광장에서 ‘현실과 청년’을 주제로 강연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고 목포 자유노동자파업을 지원했다. 1926년 1월에는 상급기관인 전남청년연합회 창립을 주도했고 사상단체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집행위원도 맡았다. 같은 해 김재명은 사회주의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도 단원으로 활동하다 조선공산당(1925년 4월17일 창립)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명은 조선공산당 전남도당에서 활동하며 신간회 광주지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28년 2월 조선공산당 3차대회에서 ‘음달’이라는 가명으로 중앙집행위원(7명)과 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 책임비서로 선임됐다. 김재명은 이때 전국 산하기구와 우편으로 소통하기 위해 한글 자모음과 아라비아 숫자를 활용한 암호문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고려공청은 3·1운동 10주년인 1929년 3월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했으나 첩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에 의해 실패한다. 김재명은 1928년 7월13일 서울에서 붙잡혔다. 김재명의 사진은 체포 한달 뒤 경기도경찰부 형사과가 남긴 것이다. 임 교수는 고려공청의 1929년 1차 중앙간부 회의록을 토대로 ‘조기승’이라는 인물이 밀정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명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폐병을 얻어 1929년 10월 보석 석방돼 광주에서 요양했으나 1930년 1월31일 세상을 떠났다. 만 30살이 되기 전이었다.
역사학자들은 김재명이 광주에서 머문 시기를 주목한다. 그가 머문 곳은 광주 동구 수기동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격문을 썼던 장석천(1903~1935) 선생이 살았던 곳과 가깝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장재성(1908∼1950)이 운영했던 빵집과도 가깝다. 세 명 다 고려공청 단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재명은 2006년, 장석천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나 장재성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형광석 장재성기념사업회 회장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시기를 봤을 때 김재명이 장석천과 장재성에게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며 “김재명은 음지, 장석천은 음지와 양지를 오갔고 장재성이 양지에서 움직이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꾸렸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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