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1인자는 없다

한겨레21 2025. 4. 27. 14: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농사꾼들]―전남 곡성 편
아들 오동이에게 당한 수탉 방이… 좋은 땅기운 받아 금세 회복하길
오동이에게 당한 방이의 모습. 방이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새벽 4시. 수컷 오동이와 방이의 울음소리가 온 마을을 가른다. 번갈아가면서 자기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목청을 드높인다. 누가 더 크게 내는지 내기라도 하듯. 어른들은 말했다. 수컷 둘이 크면, 한 놈은 제대로 살질 못한다고. 오동이는 방이의 자식인데, 오동이가 성계가 될 조짐이 보일 때부터 방이는 오동이가 땅바닥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산란장 위 30×30㎝ 공간이 오동이가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오동이가 불쌍해 그 위에 먹을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오동이는 그곳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어쩔 수 없는 이들의 질서거니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동이와 방이가 맞붙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동이가 도망가다가도 뒤돌아 부리를 맞대고, 푸다닥 날갯짓하며 서로의 발톱을 부딪쳤다. 부리로 서로를 꼬집기도 했다. 결과는 항상 방이의 승. 오동이는 도망가기 바빴다.

하루 밖에서 외박하고 온 날이었다. 닭장에 들어가니 방이가 보이지 않았다. 방이가 어디 갔나 찾아보니, 암컷 복분이가 알을 품고 있는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방이를 꺼내니 오동이가 달려와 쫀다. 방이가 졌구나. 빨갛고 화려했던 방이의 볏이 온통 상처 딱지로 검게 물들어 있었고, 볏 부위 털이 빠져 있었다. 걸음걸이도 이상하다. 제대로 걷질 못한다. 급하게 오동이를 줄로 묶어두고 방이 상태를 살폈다. 아무리 세우려고 해도 방이는 다리로 자기 몸을 가누질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다쳤을까. 오동이의 복수는 무섭고 잔인했다.

병원을 데려가야 할까. 고민 끝에 자연의 회복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방이의 다리는 치료됐다. 첫날은 움직이지도 못하던 방이가, 둘째 날은 날개와 다리를 함께 움직여 여기저기 쉬고 있었고, 넷째 날이 되자 두 다리로 설 수 있었다. 스스로 재활하듯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하루는 풀이 한창 올라오는 밭에 풀어주었다. 방이는 날개를 목발처럼 활용해 뒤뚱거리며 돌아다녔다. 양배추 꽃잎을 먹으며 잠시나마 자유를 즐겼다. 오동이가 묶여 있는 동안 방이는 바닥에 파묻혀 있길 좋아했는데, 어쩌면 땅에 있는 좋은 기운을 받아 이렇게 빨리 회복됐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개들이 몸이 아플 때 흙을 파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방이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예전처럼 다시 방이가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힘이 넘치는 오동이를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뛰지 못하는 방이는 오동이가 쫓아오면 산란장 뒤 구석이나 복분이가 알을 품고 있는 항아리로 몸을 숨기기 바빴다. 이렇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수컷들도, 암컷이 없을 때는 그저 친구로 지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암컷 복분이가 알 10개를 품고 있다. 다음주면 또 병아리들이 나올 것 같다. 병아리 때는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커가면서 수컷 같아 보이면 그 병아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될 것 같다. 또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

글·사진 박기완 글짓는 농부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