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짜고, 미래를 잇다…안동포에 깃든 ‘시간의 결’
‘온고지신’ 정신으로 명맥 이어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세워
후계자 양성하고 기술 전승
촌캉스 프로그램 ‘금양연화’ 운영
300년 고택서 전통주·요리체험
작년 1000명 찾아 힐링명소로

경북 안동 금소마을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딱 들어맞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안동포의 명맥을 이으며 전통을 지키는 한편, ‘촌캉스’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안동포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우리 민족이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게 도와준 삼베. 특히 안동산 삼베는 ‘안동포’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안동지역은 일교차가 크고 물이 잘 빠지는 토양 덕에 삼(대마)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안동포는 삼을 삼기 전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을 사용하는 ‘생냉이’ 과정을 거쳐 특히나 부드럽다.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융성했던 안동에선 삼베로 선비들의 여름 외출복이나 의례용 도포 등을 다양하게 만들었고, 이는 안동포가 발전하는 배경이 됐다.
요즘 안동포는 고급 수의에 쓰인다. 안동포로 둔갑한 중국산이 아닌 진짜 안동포 수의는 한벌에 700만원이 넘는다. 깜짝 놀랄 가격이지만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는 안동포 제작 과정을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3월말 파종한 삼은 100일이 지나기 전인 6월말에 거둬들인다. 수확한 삼 줄기(삼대)는 증기에 찐 후 껍질을 벗긴다. 이 껍질을 손톱으로 가늘게 가르고 앞뒤로 이어 붙여 기다란 실로 만든다. 이 실을 베틀에 걸어 천을 짠다. 안동포 한필은 대략 20m. 수의 한벌을 만들기 위해선 5필이 필요하다. 금소마을 여인들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안동포 짜기 기술을 대물림하며 전통을 지켜왔다.

삼베옷 소비가 줄고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며 안동포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마을 사람들은 2017년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를 세웠다. ‘안동포 짜기’는 1975년 금소마을을 소재지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다. 보존회는 한발 더 나아가 안동포 짜기가 국가적인 유산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그 결과 2019년 ‘삼베 짜기’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삼베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고 전승된 집단적 기술이기에, 정부는 특정 보유자가 아닌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를 이 기술의 전승형 보유단체로 인정했다.

보존회는 금소마을 주민이나 안동 시내에서 온 희망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2번씩 안동포 짜기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생으로서 3년간 교육을 수료하면 심의위원 앞에서 ‘이수자’ 인정 시험을 치르게 된다.

교육생을 가르치는 조경숙 교육사(72)는 “어렸을 때는 친정어머니에게, 금소마을로 시집와서는 시어머니에게 배워 거의 60년 동안 삼베를 짜고 있다”며 “보존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안동포를 알리고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보존회는 2024년부터 금소마을의 자원을 활용해 1박2일 촌캉스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금소마을은 마을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을 펼친 듯 아름답다는 뜻으로 ‘금수(錦水)’, 양지바르다는 의미를 더해 ‘금양(錦陽)’으로 불렸다. 여기에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는 홍콩 영화 제목 ‘화양연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촌캉스 프로그램에 ‘금양연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금소마을에서의 하룻밤이 인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참가자들은 300년 된 고택에서 머물며 안동포 짜기 시연 관람, 마을의 양조장 대표가 진행하는 막걸리 만들기, 셰프와 함께하는 요리 등을 경험한다. 지난해에만 1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체험객 김은채씨(25·경기 의정부)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며 “특히 마을 할머니들의 설명을 들으며 안동포 짜기 과정을 직접 보는 게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금양연화 체험 비용은 1인 16만5000원이며 여행 플랫폼 ‘피치바이피치’에서 신청할 수 있다. 3월 발생한 영남지역 산불로 금소마을도 집 12채가 전소되는 피해를 봤으나 프로그램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통화에서 권용숙 보존회 사무국장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산불 피해를 복구해가고 있다”며 “많은 분이 방문한다면 주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소마을 취재는 촌캉스 프로그램이 열린 3월20일 진행됐다. 그 다음주 발생한 영남지역 산불로 한달이 지나서야 기사를 싣는다. 2024년 2월 연재를 시작한 ‘주제가 있는 마을’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속가능성을 높여온 마을 28곳을 소개했다. 시련 속에서도 일상을 되찾아나간 금소마을처럼, 농촌 마을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며 오래도록 지속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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