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한민국 마약 범죄판을 설계하는 사람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5. 4. 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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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둘러싼 뒷거래 현장…한 끗 다른 범죄 액션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야당》은 제목만 보면 선 굵은 정치 드라마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 영화 제목의 의미는 정권을 잡지 않은 정당인 야당(野黨)이 아니라, 마약 수사의 브로커를 뜻하는 은어다. 마약 범죄를 둘러싼 뒷거래 현장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건 수사를 일종의 쇼로 둔갑시키는 데 능한 이들의 얽히고설킨 거래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부당거래》(2010), 대한민국 사회의 판을 은밀하게 움직이는 세력들을 주목했다는 점에서는 《내부자들》(2015), 통쾌한 활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베테랑》 시리즈(2015~)가 떠오른다. 《야당》은 앞서 등장한 여러 영화와 닮은꼴을 부정하는 대신 장르적 기시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화에 가깝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소재, 즉 '야당'의 존재를 내세웠다는 자신감의 방증처럼 보인다.

영화 《야당》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합법과 범법 사이

사회 어디에나 판을 짜는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마약 범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주인공 이강수(강하늘)에 의하면 대한민국 마약판은 세 분류로 나뉜다. "약 파는 놈, 잡는 놈, 그놈들을 엮어주는 나 같은 놈."

이강수는 마약 수사 브로커 '야당'이다. 이들은 마약 범죄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한 대가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처벌을 감경받는다. 검거된 이에게 형량 합의 보장을 조건으로 마약 거래 정보를 얻고, 이를 다시 경찰이나 검찰에 넘겨 현장을 실시간으로 덮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당연히 수사기관의 굵직한 실적이 된다. 추격을 따돌리려는 범죄자들의 카체이싱 동선에 끼어드는 것처럼 적극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리기사로 일하던 평범한 20대 청년 강수는 억울하게 마약사범 누명을 쓴다. 이후 검사 구관희(유해진)에게 야당 활동을 제안받고,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채 펼친 활약은 여러 실적을 낸다. 수사기관을 도와 뒷거래로 활약하는 강수의 존재 자체는 역설이다. 범죄를 소탕하는 공공선을 위한 활동이긴 하지만 엄연히 범법의 경계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응원하기엔 망설여지는 어둠의 히어로. 양지의 스포트라이트 속으로는 나설 수 없는 존재. 강수란 캐릭터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이중성은 《야당》을 한 끗 다른 범죄 액션으로 만든다.

인물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 각자의 욕망이다. 그 중심에 검사 구관희의 야심이 우뚝 서있다. 지방지청의 평검사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이강수를 야당으로 만들며 마약 유통조직 검거에서 승승장구한다. 서초동 중앙지검 특수부 자리를 노리는 그의 멈추지 않는 활약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쪽은 마약수사대 팀장 오상재(박해준)다. 작업이 다 된 현장에 항상 간발의 차로 도착하는 구관희의 팀은 정식 발부한 영장을 들이밀며 피의자를 낚아채가곤 한다.

언제까지고 사이좋게 각자의 이익을 취할 것 같던 이강수와 구관희의 동맹이 깨지는 순간도 곧 찾아온다. 급습한 마약 파티 현장에서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아들 조훈(류경수)을 만나면서부터다. 애초에 권력욕이 동력이었던 구관희는 그 길로 이강수를 내친다. 조훈의 손을 잡고 뒷배를 봐주는 대신 목격자 이강수의 입을 틀어막아야 하기에, 마약 유통업자를 포섭해 이강수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뒤 중독자로 만들어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후엔 반격의 시간이다. 여기엔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던 이들이 모여든다. 피눈물 나는 재활의 시간 끝에 구관희에게 칼끝을 겨눈 이강수, 마약 수사 중 입건된 여배우 염수진(채원빈)과 공조했지만 끝내 작전에 실패했던 오상재, 자신을 마약사범으로 만든 조훈에게 복수하고픈 염수진까지 손을 맞잡는다.

영화 《야당》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밖 현실과의 접점들

《야당》은 2021년 한 일간지 기사에서 출발했다. 수원지검 검사실에서 마약 정보 교환이 이뤄진다는 보도였다. 이후 황병국 감독은 마약사범과 검경 관계자 취재를 통해 지금과 같은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을 완성했다. 한강 위에 띄운 요트에서 벌어진 마약 파티, 강남 도심에서 피의자를 검거한 일, 경찰이 추격하던 마약사범을 지하철 플랫폼에서 검찰이 가로챈 에피소드 등은 실화의 충실한 반영이다.

애초에 정치 드라마를 지향한 것이 아님에도 언제나 현실 정치와 나란한 대목들을 남긴다는 것이 한국 범죄 스릴러의 씁쓸한 면모다. 《야당》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공간인 검사 부속실이 그중 하나다.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을 조사하는 일종의 'VIP실'이다. 깍듯한 검사의 태도와 거만한 피의자의 모습이 대조되는 영화 속 장면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조사 당시 건너편 건물에서 찍힌 사진은 '황제 소환'이라는 비판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제였다. 이쯤 되면 구관희와 조훈의 작당모의를 담은 대화 장면은 실화의 패러디에 다름 아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권력과 정치를 둘러싼 문제가 시기를 막론하고 다행히(?) 늘 소란하기에 《야당》의 장면들은 극장 밖을 나서며 하나씩 더 곱씹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소리치는 구관희 앞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실과의 접점은, 대통령을 만들고 나아가 자신이 그 자리에 섰다가 파면당한 이의 초라한 뒷모습이다. 극 중 구관희의 검사 부속실에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소훼난파(巢毀卵破)'.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깨진다는 뜻으로, 법이 망가지면 국민이 불행해짐을 의미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단순한 영화적 장치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마약 수사를 바퀴벌레를 잡는 것에 비유한다. 눈에 보이는 몇 마리를 잡을 것이 아니라 본거지를 털어야 소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에 따르면 1년간 검거되는 마약사범은 3만여 명에 달한다. 검거되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실제로는 20배가량 될 것이다. 단순한 오락영화를 떠나 마약을 둘러싼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야당》의 의지다.

'야당'이라는 새로운 소재, 현실과의 묵직한 접점, 좋은 메시지와 시원시원한 전개에도 적잖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이 휴대폰을 보지 못하도록 지루한 구간을 만들지 않았다던 황병국 감독의 장담대로 영화는 내내 크고 작은 사건을 몰아붙인다. 그 결과 그 안에 얽혀든 캐릭터들의 심리는 뒷전이다. 각각의 캐릭터는 그들 각자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대신 이강수의 대사처럼 "약 파는 놈, 잡는 놈, 그놈들을 엮어주는 나 같은 놈" 중 하나로 단순 분류된다. 연이은 사건만 보이는 영화의 전개 안에서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도 마음을 가까이 붙이며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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