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까맣게 타버렸지만 다시 지어야죠, 삶도 집도

김보경 기자 2025. 4.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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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어르신들의 슬프지만 희망 찾는 봄
오랫동안 가꾸고 지켜온 터전 한순간 사라져
꺼지지 않은 '그날'의 기억, 매일 잠 못드는 밤
"마을사람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잿더미된 집에 남은 건 녹슨 호미뿐이지만
일상 되돌리려 담담히 희망의 씨앗 틔워내
경북 영양군 석보면 답곡2리 경로당에서 한 주민이 산불 트라우마 상담을 받고 있다. 불길을 피하다가 손에 화상까지 입었다는 그는 몸도 마음도 치료가 필요하다. 영양=이종수 기자

불은 꺼졌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대다수가 고령농민인 이들은 경로당, 마을회관, 학교 강당 같은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며 당장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막막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21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을 찾았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안부라도 묻고 싶었다.

경북 의성·안동·청송을 지나 영양으로 향하는 길. 산잔등이 그대로 드러난 까만 산그림자가 도로 양옆에 드리운다. 차 안에서도 전소된 집과 창고, 축사 등이 보인다. 괴물처럼 치솟던 불길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군데군데 피어난 봄꽃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봄에 이렇게 뻘건 단풍이 든 거 본 적 있습니까.”

답곡2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 남상호씨(71)가 주변 산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산 위엔 새까만 나무 기둥만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불이 스치고 간 나무는 잎이 검붉게 그을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계절이 거꾸로 가는 이곳은 영양에서 가장 먼저 불길이 번진 마을이다. 집을 잃은 주민 25명이 마을회관과 경로당에 흩어져 머물고 있다. 대부분은 오미자·고추·배추 농사를 짓던 70∼80대 어르신이다. 대구에서 귀향한 남씨는 본격적으로 고추농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화염이 집을 덮친 그날, 그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다시 일어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마을 곳곳에 내걸려 있다.

“유년시절에 뛰놀던 고향의 산천이 그리워 10년 전부터 하나하나 준비해왔는데, 도깨비불이 집이고 농기계고 다 태아뿌고 호미 한자루도 못 건졌어요. 호두나무도 이제 막 열매를 맺었는데…. 그래도 다 포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탄내가 가시지 않은 집터에서 혹시나 쓸 수 있을까 하고 챙긴 녹슨 호미와 모종삽 몇자루는 그의 절박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비닐하우스 비닐부터 외상으로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올해 농사를 포기하는 주민도 많다.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이 배달됐다. 1인당 하루에 3만원씩 식비가 지원되는데, 직접 음식을 해 먹을 여건이 안되는 곳은 이렇게 식당에서 도시락을 사다 먹는다. 둘러앉은 식탁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며 입술만 연신 달싹거렸다. 매일 먹는 도시락이 지겨울까 싶어 가져온 간식거리를 내밀며 힘겹게 운을 뗐다.

“잠은 좀 주무세요?”

최금식씨(64)는 지나가던 경찰의 도움으로 간신히 대피했다. 불이 붙은 집에서 뭐라도 챙길 수 있을지 머뭇거리던 새에 불길이 번져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급히 나왔다.

“소주 한두잔 없이는 도저히 잘 수가 없어요. 잠이 들어도 불안해서 한시간 만에 눈이 떠져요. 정신을 잘 붙잡아야 하는데 참 어렵네요.”

타버린 집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어떤 마음일지 겪지 않은 이는 모른다.

마을주민 모두 밤잠을 설친다. 처음엔 잔불이 남았을까 자다가도 밖에 나가보기를 수십번.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며 안 마시던 소주를 몇병씩 들이켜기도, 악몽으로 여러차례 잠에서 깨기도 한다. 마을 최고령자인 이수남 할머니(91)는 매일 경로당에 앉아 있기 답답해 바깥바람이라도 쐬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내 집이 다 타뿌고 없어. 남의 집에 있는 게 마음이 안 편해. 나 집 하나만 해주소. 나 혼자만 살 수 있으면 되는데….”

경로당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폭삭 내려앉은 이씨 할머니 집이 보인다. 할머니는 까맣게 타버린 집을 한참 바라본다. 같이 살던 바둑이는 불길을 피하라고 목줄을 풀어줬다. 혹시나 바둑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할머니는 매일같이 밥그릇에 밥을 담아놓는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집’이다. 저녁이면 돌아가 밥을 짓고 편히 몸을 뉠 수 있는 집. 하지만 일상을 되찾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마을 이장 이상학씨(56)와 부녀회장 신영선씨(58)는 어르신들의 손과 발, 입과 귀가 돼준다. 이들도 처지가 딱하긴 마찬가지다. 깨끗이 지어놓은 집과 창고, 버섯 재배사 모두 불에 타버렸다.

모든 게 탔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영양=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처음 대피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랑 같이 텐트를 짓고 식사를 갖다 나르는 걸 보고 어떤 분이 그래요. 그쪽 집은 안 탔냐고. 우리 집이 제일 먼저 탔습니다. 근데 뭐라도 해야죠. 손 놓고 있으면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텐트 하나 못 얻고 당장 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돈도 없지만, 평생 땅만 일구고 살던 사람들이라 결국 여기서 다시 농사짓고 살아야 합니다.”

이장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린다. 마을 피해 복구를 위해 군청에 문의하고 필요한 절차를 처리하는 일도 만만찮다. 그래도 그는 “불길 속에서도 마을 사람 다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며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도움의 손길도 이어진다. 이날 오후 3시, 구호단체에서 보낸 지원 물품이 도착했다. 반팔·반바지와 물티슈 등 무더워질 날씨를 대비한 생필품이다. 박정숙 대한적십자봉사회 영양군지구협의회 회장은 “산불 직후에 비하면 지원 물품도 많이 줄었다”며 “지금 당장은 급한 게 없지만, 임시 주택에 입주하면 필요한 게 또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을회관 옆에선 이재민을 위한 모듈러 주택 설치를 서둘고 있다. 상수도와 전기 인입이 완료되면 최대 2년간 머물 수 있다.

산불은 이들의 삶터뿐 아니라 마음마저 까맣게 태웠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던 화염, 소중한 것들을 눈앞에서 놓아야 했던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타버린 마음을 묻어두고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고요한 절망 속에서 힘겹게 내는 그들의 목소리가 희망에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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