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 감각은 절대 숫자로 못 읽어요”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신 치과기공소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자리 잡고 있다. 두 명의 치과기공사와 사무장, 그렇게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소박한 공간이다. 사무장은 치과 기공물을 배달하고, 보철물의 밑 작업을 담당한다. 치과기공사 두 사람이 부자 사이라는 것을 듣고 간 자리, 얼굴을 마주하니 두 사람의 닮은 외형에 설핏 웃음이 났다.
이태신씨는 예순살, 그의 아들인 이강녕씨는 서른세살이다. 두 사람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아버지 이태신씨와 먼저 얘기를 나눴다. 부자 관계이면서도 엄연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다. 같은 자리에서 말을 하기에는 껄끄러운 얘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인터뷰가 신문 지면에 실린다고 하자, 이태신씨는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기공소에 얽힌 가벼운 이야기부터 건넸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러더니 “글 쓰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며 그는 치과 기공과 관련한 잡지를 주섬주섬 내게 내보였다. 손때가 묻은 책자 안에는 치아의 모형을 본뜬 보철물 사진과 기공 관련 기구들이 담겨 있었다.
요즘 치과기공소의 상황을 묻자, 그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주 고객은 치과예요.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이십여년 전에는 개인 고객을 직접 받기도 했죠. 그런데 정부에서 제재하니까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 때문에 개인 고객이 아니라 치과를 상대로 영업하고, 일하는 거로 바꿨죠. 이쪽 산업을 보호해 주겠다고 정부에서 나선 것인데 생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 거예요.”
그는 정부에서 제재하는데도 어떤 치과기공소들은 개인 고객들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짚었다. 그러나 그렇게 치과기공사들이 무분별하게 개인 고객을 늘리면 당장 수익은 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피해를 보는 고객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수익에 매달려 정작 중요한 상품의 질을 놓칠 수 있고, 그로 인해 고객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 또 치과기공소와 고객이 거래하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거래한 고객이 누구인지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를 구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치과기공소는 개인 고객을 상대하면 안 되어 정부 등이 고객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그간 거래한 게 들통날까 봐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결국 정부 등에서 피해자를 구제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여하튼 개인과 거래하는 치과기공소는 단속에 걸리면 벌금형이나 영업 정지에 처한다고 한다.
기공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를 묻자, 그는 “지르코니아, 골드 크라운, 인레이 80 프로, 포세린 정도가 되겠네요”라고 답했다. 생소한 단어들에 대한 설명을 청하자, 이태신씨는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설명을 덧붙였다.
“인레이는 충치 부위가 넓고 힘이 강한 어금니 부위에 적합한 치료 방법이에요. 충치 부위를 제거한 뒤에 썩은 치아 부위를 본떠 모형을 만들고, 기공소에서 만든 치아를 충치 부위에 붙여넣죠. 인레이 비율이 80 프로 이하면 단단함이 떨어져 문제가 생겨요. 포세린은 치아를 도자기처럼 효과를 내주는 것이에요. 대강 보면 자연 치아처럼 보이죠. 그래서 연예인들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한테는 자기 치아처럼 보여 인기가 많아요. 고객의 선호도와 치과 의사가 낸 의견을 바탕으로 치아를 만들 방법을 선택하죠. 한마디로 말해 돈이 되는 치아가 아니라 고객에게 가장 나은 치아로 결정하고 있어요.”
흔히 금니라고 부르는 치아는 높은 금액과 눈에 띄는 빛깔 때문에 요즘은 인기가 예전만은 못하다고 한다.
아들과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불편할까.
“좋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인건비가 높아져서 직원을 쓰면 지출이 늘거든요. 치과기공소 사정이 안 좋을 때는 아들 급여부터 깎아야 하니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요. 물론 다른 사람이 직원이라도 그렇지만, 내 자식이면 심정이 더욱 복잡해지죠.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아들이지만 직원한테 계속 미안해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하여튼 아들도 저도 매출이 떨어져서 힘든데, 서로 걱정할까 봐 괜찮은 척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식구라 아마 더욱 복잡한 마음일 거예요.”
이태신씨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아들 역시 불편해도 툭 털어놓지 못해 어려울 거라며 말을 이었다.
“요새 치과기공사들은 신기술을 쓰니까 속도나 결과만 보면 일을 잘하지만 입안 감각은 절대 숫자로 못 읽어요. 저처럼 현장에서 구른 놈이 훨씬 나은 부분이죠. 어쨌거나 제가 여길 그만두면 아들이 많은 걸 떠맡아야 한다고 상상하니 마음이 짠해요. 저야 곧 은퇴할 사람이니 참고 넘어가지만, 강녕이는 이 바닥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잖아요. 요즘 치과기공소가 늘고, 잘 배운 기공사들도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요. 잘 가르치지 못하고 그간 몰아세우기만 했나 하는 후회도 되고요. 사장이자 아버지인데, 진짜 물려줘야 할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소홀했나 무척 고민이 되죠.”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며 아버지 이태신씨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끝낸 뒤 이강녕씨와 마주 앉았는데, 아버지와 달리 강녕씨는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유튜브 세대여서 그런지 핸드폰을 동영상 촬영 모드로 해놓고 그의 앞에 두어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아빠와 일하는 것의 장점은 가까이 있다는 거예요. 훌륭한 선생님이 곁에 있으니 어려운 걸 편히 물어볼 수 있거든요. 아빠니까 부끄러운 게 덜하고, 제가 잘 몰라도 엄청난 흠이 아니니까 마음이 편하죠. 제가 실수해도 아빠는 이해해 주시겠지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도 모르게 아빠를 든든한 방파제로 생각하고 있나 봐요.”
강녕씨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의 장점에 관해 이렇게 말한 뒤 잠시 말을 멈췄다.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심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불편한 순간도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서운할 때도 있긴 해요. 부자 관계니까 말씀을 편하게 하실 때가 그래요. 둘이 있어도 듣기 좋은 말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있을 때 하시면 당황스러워서 제가 할 말을 잊곤 하죠. 저와 아빠는 선이 있는 관계예요. 사장과 직원의 관계죠. 그런데 식구라는 이유로 그 선을 무시하실 때가 있긴 해요. 무시라기보다는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고 해야겠네요. 아빠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가끔은 사장님인 아빠 앞에서 마음을 추슬러서 일해야 할 때가 생겨요.”
아버지 입장에선 ‘우리 식구끼리’라는 생각이 들어 말하는 것이겠지만, 아들 강녕씨는 아버지의 어떤 말과 행동에 섭섭함을 느껴도 ‘식구라서 감정을 표현하기 더 어려운’ 순간도 있어 보였다.
강녕씨는 또 전통 방식으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일이 밀릴 땐 답답함을 느낀다고도 털어놓았다.
“요즘 치과 기공업에는 캐드, 캠, 3디(D) 프린터 같은 신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아빠는 전통 방식을 우선하시니 작업 속도가 느리세요. 그게 정석이니 맞는 것인데 일이 밀릴 때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요. 제가 보조하고는 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죠.”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괜한 말을 했다며 자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더불어 지금의 업계의 현실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치과기공소의 경쟁이 날로 심해지며 매출이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데, 그 끝에 있는 것이 본인의 월급일 수도 있다.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이강녕씨가 하는 일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치아의 모형을 디자인해 그것을 수치로 컴퓨터에 넘겨서 작업해요. 사전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모형을 떠서 치아를 완성하는 것까지 거의 혼자 할 수 있는데,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 베테랑인 아버지에게 미흡한 부분을 여쭙고 있어요. 제가 한 작업을 확인하고 정교하게 가공하는 일은 아빠가 하고 계시죠. 빨리 독립하고 싶은 욕심이 나지만 사람에게 치아는 오복 중 하나니까 중요하잖아요. 느리더라도 최대한 꼼꼼하게, 차근차근 제대로 배우려고 노력해요. 중요한 일인데 열심히 해야죠. 치과기공소에서 앞으로 1~2년 동안 실력을 늘려서 독립하는 것이 꿈이에요.”
신 치과기공소를 나서며 우리 부모님을 떠올렸다. 두번도 아니고 서너번, 가끔은 열댓번까지, 충고인지 모를 잔소리를 하는 존재이다. ‘차 조심해라, 건강 조심해라, 몸에 안 좋은 것은 되도록 먹으면 안 돼, 요즘 이상한 사람들 만나는 건 아니지?’ 부모님에게 반복적으로 들었던 얘기들이다. 날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부모님 얼굴을 마주하면 짜증부터 부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마음은, 어쩐지 말로 꺼내기가 어렵다.
가까워서 좋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하는 가족과 친구. 그 소중한 존재인 가까운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계속 그 모습으로 내 곁에 있을 거라며 믿으면서.
신 치과기공소의 간판은 낡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손과 젊은 손이 하나로 모여 누군가의 건강한 치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자(父子)는 앞으로도 일과 일상으로 부딪칠 터이지만 같이 보듬으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오늘의 인터뷰는 일에 관한 이야기이자 다른 세대 간의 대화였고, 사랑하는 사이에 대한 사연이었다.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문득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보고 싶어졌다.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등등 나의 식구와 대안 가족을 다룬 다양한 영화. 무심한 듯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들.
신 치과기공소 부자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을 애정으로 보듬으며 잘 어울려 지내길 바라본다.
이정연 l ‘월급사실주의’ 동인.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 ‘속도의 안내자’, ‘re, 셸리’를 냈고,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을 출간했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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