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산불 그후 한달…“힘든 마음 나누는 것이 회복의 시작”
불안·우울감 덮어두기보다 적극 치료를
감정 표현 서툴다면 글쓰기·명상 등 추천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흔들리는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영남지역을 덮친 산불이 꺼진 지 한달 가까이 됐지만 주민들에겐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켜보는 이들도 마음이 무겁다. 헤아리기 힘든 아픔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까. 최수희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산불 피해 주민의 마음 건강을 살피는 방법을 알아본다.
-산불 이후 한달이 지났는데도 심리적 고통이 이어진다면 어떤 상태로 볼 수 있나.
▶불안과 고통이 한달 이상 지속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의심해볼 수 있다. 대표적 증상으로 피해 당시 났던 냄새·소리 등을 다시 느끼는 ‘재경험’, 아픈 기억과 관련된 장소·대화를 피하는 ‘회피’, 작은 소리에도 과하게 놀라는 ‘과잉경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는 ‘우울’ 등이 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국가트라우마센터 누리집에서 자가 진단을 해본 뒤 결과에 따라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산불 피해를 본 가족·이웃 등의 마음 상태는 어떻게 살펴야 할까.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은 평소와 다른 행동이다. 예를 들어 한달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잤거나 술·담배가 늘었는지 살펴보자.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자주 찾거나, 화를 내고 자책하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것도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복지관·경로당 등 매일 가던 곳을 멀리하고 혼자 집에만 머무는 것도 주시해야 할 변화다. 정신과 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어르신이라면 가정의학과처럼 접근하기 쉬운 의료기관부터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을 위로할 땐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위로는 말보다 들어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경청하는 것만으로 든든한 사회적 지지가 된다. ‘밥은 잘 드셨어요?’ 같은 일상적 질문으로 말을 이끌어내보자. 아픔을 말로 표현하는 ‘언어화’ 과정은 피해자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에게는 글쓰기를 권해보자. 오늘 기분을 -10에서 +10 사이로 점수 매기듯 기록하게 하고, 그다음엔 수면시간·식단·음주량까지 적어본다. 더 익숙해지면 ‘마음 챙김’이나 명상처럼 나를 들여다보는 활동으로 나아간다.
-산불 피해를 본 주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불안·우울 등은 나를 지키려는 마음의 신호일 수 있다. 무시하거나 덮어두기보단 귀 기울이고 표현해야 한다. 아픔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고통스러운 기억이 덜 힘든 순간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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