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폐지될 뻔한 사태 [역사&오늘]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3년 4월 27일, 한국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로 '한글 간소화 법안'이 국무총리 훈령 제8호로 전격 공포됐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폐지하고, 과거의 표기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였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받침 표기를 간략화해 '있다'를 '잇다'로, '꽃'을 '꼿'으로 적는 등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하는 것이었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을 쓰지 않고 이어 적는 방식(예: '잊으니'를 '이즈니'로)을 포함했다. 또한, 어원을 밝혀 적는 방식을 지양하여 '길이'를 '기리'로, '낱낱이'를 '낫나치'로 표기하도록 했다.
법안 추진 배경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적인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오랜 미국 생활로 인해 한글 표기에 어려움을 느꼈을 가능성과, 당시 북한이 형태주의를 강화한 '조선어 신철자법'을 발표한 것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법안은 공포 직후 학계, 언론,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글의 과학성과 체계를 훼손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복잡해 보이는 형태주의 맞춤법이 오히려 의미 파악에 용이하며,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국어 정책을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대통령의 독단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높았다.
이에 정부는 1953년 7월,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어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국어심의위원회는 오히려 현행 맞춤법을 유지하고 가로쓰기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5년 9월 "민중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자유에 부치고자 한다"는 담화를 발표해 한글 간소화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로써 한글 간소화 법안은 약 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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