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 대 태우고 가자"…산불 악몽에도 등산로 담배꽁초 '수북'
청계산 등산로 곳곳 흡연 흔적
산림보호법상 과태료 500만원
시민들 "뉴스도 안 보나" 우려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13도의 맑은 날씨를 보인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청계산 입구에는 상춘객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한 손에는 스틱, 다른 손에는 김밥 봉투를 든 이들은 삼삼오오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올랐다. '춘계 워크숍'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 사진을 찍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산림 내 금연. 화기 및 인화물질 소지 금지' 등 안내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됐다. '푸른 숲, 그 사랑의 시작은 산불조심이다', '산불은 한 순간, 복구는 한 평생. 산불조심'이라는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
현수막을 본 등산객 2명은 담배를 꺼내려다 "맞은 편에서 피우자"고 발을 돌렸다. 반면 "한 대 태우고 가자"며 담배를 입에 무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등산로 200m 전'이라는 나무 팻말 앞에서 흡연을 한 뒤 등산화로 꽁초를 짓이겼다. 그늘막 아래, 벤치 주변, 등산로 초입까지 흙먼지에 파묻힌 담배꽁초 수십여개가 발에 채였다.
지난달 영남권을 휩쓴 사상 최악 산불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등산로 앞에서 흡연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일제히 불안을 호소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60대 A 씨는 "외가가 경북 안동인데 사과밭도, 집도 다 탔다. 자매들이 십시일반 돕고 있지만 땅이 잿더미라 당장 나무를 심을 수도 없고, 언제쯤 회복될 지 기약도 없다"며 "그런 걸 생각하면 산에서 불을 피우면 안 된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연차를 맞아 산을 찾았다는 30대 직장인 윤모 씨는 "흡연하는 사람을 보면 '뉴스도 안 봤나' 싶다"며 "올라가기 전에 주머니 속 라이터도 두고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등산객 B 씨도 "맑은 공기 맡으러 와서 왜 그러냐"며 "멀찍이서 피우고 올라가야지"라고 말을 보탰다.
청계산 등산로 입구 '산불 진화 장비보관함' 속에는 삽과 펌프가 가지런히 정돈돼있었다. 반면 '인화물질 보관함'에는 누군가 두고 간 안경 1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산림보호법 34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산림 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산림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거나 불을 가지고 가는 행위,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같은 법 57조에 따라 해당 행위를 한 자에게는 적발 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자치구는 "계도와 단속을 하고 있으나 반발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 만난 구청 관계자는 "공원은 금연구역이라 흡연자를 발견하면 계도를 하고 있다"며 "흡연 단속은 보건소에서, 무단투기는 구청 청소과 소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못 피우게 하면 반발하는 사람도 있고, 산 초입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는 사유지라서 구청에서도 단속할 권한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발생 약 149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산불영향구역은 총 4만8239ha로, 여의도 면적의 166배에 달한다. 지난달 30일 기준 30명이 목숨을 잃고 45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산불 원인을 입산자 실화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펴낸 '2025년 산불 제대로 알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5455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31.2%가 입산자 실화로 발생했다. 기관은 "봄철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건조한 날씨 탓도 있지만 쓰레기 소각이나 등산객 실수 등 인위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inj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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