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향의 아트칼럼] 만남, 조안 미첼과 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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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침'이 '만남'이 되지는 않는다.
'스치는 것'과 '만나는 것'을 구별하는 건 공간과 의식의 세계 속에 그 사이를 흔들고 가로질러 가는 파동, 그리고 울림일 것 같다.
나만의 지도는 여전히 없지만 누군가 해냈다는 믿음과 함께 밀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뉴욕의 첼시에 있는 조안 미첼 재단은 그녀를 세세히 조명해나가는 작업을 올 한 해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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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침'이 '만남'이 되지는 않는다. '스치는 것'과 '만나는 것'을 구별하는 건 공간과 의식의 세계 속에 그 사이를 흔들고 가로질러 가는 파동, 그리고 울림일 것 같다. 과연 내 생에는 몇 번의 울림이 있었을까?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세상에는 이런 관계에 놓인 존재가 있는 것 같다. 내게 조안 미첼(1925~1992)이라는 작가가 그렇다. 사실 나는 2002년까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시카고의 문화환경이 풍부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그녀는 피겨스케이터 ,로, 시인이자 화가로 매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추상표현주의에 빠져서 책을 끼고 다녔던 내가 마크 로드코, 잭슨 폴락 등과 깊이 교유하던 그녀에 대해 몰랐던 건 내가 가진 책에서는 프랑스에서 살며 작업하던 그녀를 다루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건 바보짓이었다.
2001년 후학기, 대학원 졸업전을 앞두고도 내게는 하고 싶은 그림보다는 하기 싫은 그림의 목록만 수두룩했다. 형상을 가진 것, 이야기를 가진 것, 사회와 역사의 하부구조에서 주제를 찾는 것, 자기반복적인 것, 어제의 자기를 복제하는 것, 무엇보다 화가의 논리로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유가 많았다. 이를테면 식성 까다로운 식사 상대처럼 메뉴판 앞에서 까탈을 부리는 것이었다. 대학원 시절 수업하면서 교수님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단순하게!'였다. 그러나 입으로는 '네, 해보겠습니다.'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있고 그렇다면 그건 지구에 있는 생각이고 그걸 표현하는 건 이런 생각을 가진 나의 일 아니야?'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가는 길은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모르는 길 앞에 서 있는 탐험가와 같았다. 당시의 내 짧은 지식으로는 주변에 그런 작업을 하는 사례를 볼 수가 없었다.
2001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가족여행이 취소되면서 여행계획을 혼자 짜야 했다. 나의 선택은 망설임 없이 뉴욕!이었다. 영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방향치인 내가, 겁쟁이인 내가 두 주 만에 메일계정을 만들고 처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한인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의 주인은 그간 여러 차례 메일을 통해서 내게 왜 뉴욕에 오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다. 도착하는 날 저녁 주인은 바로 같이 외출하자고 했다.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무료입장하는 저녁이라고. 피곤한데 무료라고 가야 하나 싶었지만 화가라고 그가 배려해둔 프로그램이기에 고마운 마음에 따라나섰다.
아! 모마의 입구에 들어서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안 미첼 회고전! 나는 나도 모르게 '봐! 되잖아!!'하고 외쳤다. 그래, 되는 거였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 이거였구나, 조안 미첼이라는 이 작가는 해냈구나 감탄하면서. 돌아와서 두 달만에 작품을 하고 졸업전을 치렀다. 나만의 지도는 여전히 없지만 누군가 해냈다는 믿음과 함께 밀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올해는 조안 미첼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세계적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네 명의 여성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뉴욕의 첼시에 있는 조안 미첼 재단은 그녀를 세세히 조명해나가는 작업을 올 한 해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 파동과 울림을 통해 더 깊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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