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엔 정파 없어…사이버안보와 경제안보법제 정비에 다음 대통령과 국회는 적극 나서야“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2025. 4. 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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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분명치 않은 ‘새로운 전쟁’…하이브리드 위협엔 ‘法방패’가 중요
‘영원한 전쟁의 시대’에 위기에 오히려 둔감해진 한국, 정보 당국의 활동을 제약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국란 극복에는 영웅의 서사가 있다. 10세기 말과 11세기 초, 거란과의 전쟁에서 고려 서희와 강감찬의 승리는 성종의 국가법제 구축과 북방 대비태세, 실사구시의 외교, 그리고 용인술의 뒷심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통제공(제독) 이순신의 독보적 전공 뒤에는 그를 오래 눈여겨봐온 선조가 있다. 조정은 조선의 전략적 가치로 명을 설득했다. 조·명의 육·수군 연합과 군량미 원조를 끌어냈다. 비변사를 정책·전략의 컨트롤타워로 세웠다. 정보전에도 힘썼다. 류성룡, 이원익, 김성일 같은 사람을 치밀하게 평가해 썼다.

2차 세계대전 종식과 6·25 동란 승전에 미국의 맥아더가 있었다면,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의 안보법제와 의사결정체계 정비는 그 펀더멘털이다. 국가안보법을 제정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했다. 'NSC 보고 제68호'는 소련 봉쇄 및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냉전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심해 항복을 받아냈다. 한국전쟁에는 유엔군을 즉각 파병했다.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 72년간의 불완전한 평화는 불안하다. 가장 강고한 적을 마주하고 있고, 글로벌 지정학·지경학 대치의 최전선임에도 위기에 둔감해졌다. 역설이다. 안보는 주어진 것으로 여긴다. 주한미군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고, 삼면이 바다이며, 북은 철책으로 막혀 있으니 안전하다는 것일까? 한편에서는 최전방의 육군 주력사단 및 국방부 직할의 핵심 부대를 쿠데타에 동원해도 안보에는 뒤탈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방첩기관의 권한 남용·인권 침해 방지 법익이 안전보장과 방첩의 피해보다 크다며 그들의 활동 제약을 능사로 안다.

2021년 정부세종컨벤션센터 홍보동에 개소한 부처 합동 사이버안전센터. 인사혁신처와 국가보훈처, 법제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정부 최초로 4개 부처가 협업을 통해 사이버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은 글로벌 지정학·지경학의 대치에 법제 정비로 대비

'영원한 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군사 충돌의 동시다발 속에 예기치 못한 도전이 신흥하는 하이브리드 위협이다. 새로운 전쟁은 전선이 분명하지 않다. 눈에 안 보이는 경제 전쟁이요, 육·해·공·우주·인지의 모든 영역이 사이버 공간으로 통하는 사이버 전쟁이다. 민간과 공공, 국내외가 통합된다.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가 작동한다. 이 전쟁에서는 방패가 더 중요하다. 방패는 법제가 좌우한다.

큰 위기를 겪고 나서야 법제를 손볼 동력을 얻게 된다. 미국은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1996년 경제스파이법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거래비밀절취석명법과 2013년 벌칙강화법으로 산업기밀 유출을 간첩죄로 다루었다. 그러나 잇단 사이버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2014년 11월 '소니 픽처스' 해킹과 2015년 미 인사관리처의 정보 유출 사건에 놀란 미국은 2016년 초당적으로 '사이버정보공유 및 보호법'을 제정했다. 주요 인프라 공격과 영업비밀 유출 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다. 

2020년 7월, 미 법무부는 코로나19 백신의 연구기밀 탈취를 시도한 중국인 해커를 기소했다. 12월에는 네트워크 관리 회사인 '솔라윈즈'의 소프트웨어 공급망이 악성코드에 감염돼 3만3000명의 고객과 미 행정부 부처들이 정보 탈취 위험에 빠졌다.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됐다. 2021년 5월 미국 최대 송유관 업체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의 파장은 컸다. 2021년 7월, 집권 6개월 만에 국가정보장실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 열강 중 한 나라와 실제로 전쟁을 치른다면 사이버 분쟁으로 인한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2022년 3월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이버안보강화법에 서명했다. 에너지와 금융 등 주요 인프라 기업들에 사이버 사건 신고 의무를 부과했다.

2010년 일본 해안경비대는 중국 저인망 어선이 센카쿠열도에 접근하자 선원들을 구금했다. 희토류의 대일 수출금지와 같은 경제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한 중국의 경제 압박에 일본은 충격을 받았다. 

IT 강국의 개방과 창의성은 지킬 때 더 확장돼

아베 전 총리는 퇴임 5개월 전인 2020년 4월,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반을 두고, 3대 경제안전보장전략의 컨트롤타워로 세웠다. 첫째, 경제적 국가책략(statecraft)에 착수했다. 경제력을 이용해 안보의 전략적 정책목표를 구현한다. 전략물자 수출과 기술 수출 통제, 외자 및 외국인 토지거래 규제를 강화한다. 둘째, 기간 인프라 산업 보호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리쇼어링을 지원하며, 반도체·첨단 배터리를 전략물자화한다. 셋째, 미국·인도·호주 등 쿼드 국가들과 협력해 희토류와 5G·반도체의 공급망을 안전하게 한다. 2021년 10월에는 경제안보대신이 신설돼 NSC에 옵서버 멤버로 참여한다.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 제정되어 기술 경쟁과 경제  안보의 법제를 갖추게 된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국가 인프라와 정치·경제·사회 가치, 그리고 개인정보를 소리 없이 위협하는 것은 별도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한국의 첨단기술 절취와 인력 유인, 안보시설 부근의 땅 매입 등 중국의 경제 안보 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가해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을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보복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제 영토와 사이버 공간을 지킬 행정작용 법제는 불비다. 공격자를 지속 모니터하고, 적의 길목을 지키다가 확인·견제·차단한 뒤, 추적해 귀속 책임을 묻고, 거기에 잠복해 장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사이버안보법 제정 논의는 20대 국회에 문재인 정부의 안이 제출되었다. 21대 국회 때는 '조태용안' 및 '김병기안'이 있었지만, 다 무산됐다. 주무관청인 국정원에 대한 권한 집중 및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여전한 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정권 교체 때마다 불거졌기 때문이다. 경제 안보는 통합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마저 없다. 

안보법제에 정파성이 작동할 공간은 좁아졌다. 형법상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을 위한 간첩'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데 국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게 그 방증이다. 시민 자유와 개인 프라이버시 향유를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할 때, 영웅들을 법제의 갑옷을 입혀 전장에 보내야 유효하지 않겠나.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IT 강국의 개방성과 창의성은, 지킬 때 더 확장된다. 다음 대통령이 진지하게 접근할 바다.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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