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을 구한 건 신이 된 고양이였네 [임보 일기]

이용한 2025. 4. 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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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에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일본 미야기현에 위치한 섬 다시로지마(田代島)의 항구에는 이른 새벽이면 고양이들이 생선을 얻어먹으려 모여든다. ⓒ이용한 제공

일본 미야기현의 섬 다시로지마(田代島) 부둣가에서는 매일같이 해 뜰 무렵이 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고기잡이 나갔던 어부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고양이들이 선착장으로 마중 나오는 것이다. 봄에는 보통 새벽 4시쯤부터 이 광경을 볼 수 있는데, 4시10분에 작업장에 도착하니 이미 열댓 마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고양이들은 어부가 던져주는 물고기를 먹기 위해 모여든 녀석들이다. 예부터 다시로지마 어부들은 고양이에게 생선 나눠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고, 고양이 또한 어부들에게 생선 얻어먹는 것을 당연시했다.

오전 4시18분, 일출과 함께 본격적인 물고기 선별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업장에서 대기하던 고양이들도 하나둘 어부 곁으로 모여들었다. 작업 시작과 거의 동시에 어부는 첫 물고기를 고양이들에게 던져주었다. 운 좋게 물고기는 노랑이 앞에 떨어졌고, 녀석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낚아채 첫 ‘득템’에 성공했다. 어부가 그물에서 갈고리로 물고기를 떼어낼 때마다 고양이들은 입맛을 다시며 집중했다. 가만 보니 어부는 멀쩡한 생선인데도 고양이에게 던져줄 때가 많았다. 대체로 서열 높은 고양이는 앉은자리에서 물고기를 받아먹었고, 상대적으로 약한 고양이는 물고기를 물고 자신만의 은밀한 장소로 이동했다. 다시로지마에서는 워낙 어부들의 인심이 좋아서 대략 고양이 한 마리에 물고기 네댓 마리는 기본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어린 고양이조차 덩치 큰 물고기를 물고 의기양양 사라진다.

사실 내가 다시로지마에 온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다툼 없이 물고기를 얻어먹는 풍경. 아침놀을 뒤로하고 저마다 한 마리씩 물고기를 물고 가는 풍경. 이곳에서는 고양이들에게 대체로 공평하게 물고기가 배분되는 편이다. 한 고양이가 물고기를 먹는 동안 자연스럽게 다음 물고기는 다른 고양이에게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획량에 따라 다르지만, 선별 작업은 보통 2시간 정도 진행된다. 자연스럽게 후반부로 갈수록 작업장에 모인 고양이 수도 줄어든다. 물고기로 배를 채운 고양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때문이다.

많은 고양이가 다툼 없이 물고기를 얻어먹는 모습은 다시로지마의 부둣가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용한 제공

다시로지마에서는 예부터 고양이를 풍어의 신이자 상서로운 존재로 여겼다. 섬의 한가운데쯤에 ‘고양이 신사’를 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과거 이 섬에는 누에치기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잠업에 위협이 되는 쥐를 퇴치하는 고양이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소중한 까닭에 다시로지마에는 대대로 개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고양이섬으로 알려진 다시로지마가 한 번 더 유명해진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당하고 난 이후다. 당시 섬을 덮친 쓰나미로 인해 항구의 여러 시설이 파괴되고 어선과 굴 양식장이 모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다. 섬사람들의 삶이 무너졌으니 고양이의 삶 또한 온전할 리 없었다. 그야말로 섬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재난 직후 다시로지마는 재건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때 기적처럼 섬을 살린 건 놀랍게도 고양이였다. 이른바 ‘고양이섬을 구해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냥이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전역 애묘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3개월 만에 목표 금액 1억5000만 엔(약 18억원)을 달성했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복을 불러온 셈이다(복을 불러온다고 알려진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는 오른발을 들고 있으면 ‘돈과 복’을, 왼발을 들고 있으면 ‘사람’을 불러온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다시로지마는 조금씩 복구되었고, 고양이들도 일상을 되찾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왜 다시로지마가 ‘고양이섬’이 되었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다.

이용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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