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덕분에 운명의 짝을 찾았어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5. 4. 26. 09:0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감독: 마이클 모리스
출연: 르네 젤위거, 휴 그랜트, 레오 우달

그해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혼자였다.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다 말고 일어나 아무 메시지도 저장되지 않은 텅 빈 자동응답기만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예전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손발을 크게 휘젓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Don’t wanna be/ All by myself/ Anymore.”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노래 가사를 곱씹다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새해 소망 1번, 몸무게를 9㎏ 뺀다. 2번, 빨래는 반드시 빨래 바구니에 집어넣는다. 3번, 이런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 일 중독자, 관음증 환자, 과대망상 환자, 변덕쟁이, 변태···.” 하지만 ‘절대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남자’의 그 모든 특성을 가진 직장 상사 대니얼 클리버(휴 그랜트)와 덜컥 사랑에 빠져버린 주인공.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그래서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와 우리 모두 사랑에 빠져버린 2001년 겨울.

루돌프 사슴이 그려진 스웨터를 입고 있는 마크 다시(콜린 퍼스)로 시작해서, 바지도 입지 않고 그를 향해 달려가는 브리짓 존스로 끝난 이야기의 속편이 나오는 데 3년이 걸렸다. 나쁜 남자 대니얼의 끈질긴 유혹을 이겨낸 브리짓 존스에게 마크가 청혼하는 엔딩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에 만든 3편에서 브리짓 존스는 엄마가 되었고, 다시 9년이 더 흘러서 나온 이번 4편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자 재취업을 생각하는 ‘경단녀’가 되어 있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던 마크가 이젠 곁에 없고, 항상 치근대던 바람둥이 대니얼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설렐 일 없는 ‘남사친’. 마흔 넘어 낳은 아이들 데리고 학교에 가면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로 오해받는 브리짓 존스에게 꿈같은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스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젊고 잘생긴 연하남 록스터(레오 우달)와 사랑에 빠지는 일. 나를 반기는 옛 직장으로 돌아가 다시 경력을 이어가는 일. 나에겐 통 일어나지 않는, 브리짓 존스에게만 늘 일어나는, ‘일도 사랑도 모두 잘 풀리는 기적’이 이번에도 영화 내내 이어진다.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보러 간 영화였다. 이미 수명이 다된 시리즈, 억지로 연명치료하는 4편일 것만 같았다. 아니었다. 모두 같은 생각일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랑했던 시리즈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만드는, 꽤 괜찮은 재회였다. 20대에 처음 만나 삶의 엇비슷한 굴곡을 함께 겪어낸 친구와 밤새 웃으며 수다 떨다가 헤어질 때 찔끔 눈물을 찍어내는, 시끌벅적한 송별 파티였다.

“그러니까 사실, 어쩌면···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많이 좋아해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한다고요.” 그해 겨울, 마크 다시의 고백에 설렜던 브리짓 존스가 그 뒤로 24년을 살아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줄 사람을 찾고 또 잃어버린 24년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타난 한 사람, 브리짓 존스가 평생을 찾아 헤맨 운명의 짝. 바로 브리짓 존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줄 사람은 처음부터 결국 나였으므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의 포스터엔 자연스럽게 이런 카피가 새겨졌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다시 나, 브리짓.”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