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내일 선종하셨으면…’이라는 발칙한 생각[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4월 21일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영남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됐습니다. 신문은 대체로 한 달, 100일, 1년 같은 단위에 예민합니다. 신문사진의 정형화한 틀이기도 합니다. 봄기운이 완연해 불에 탄 나무 주변에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산불 후속 취재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사진입니다. 대개 그런 사진에는 ‘그래도 희망’ ‘이젠 회복’ 따위의 단어를 설명에 써넣습니다.
21일 월요일자 1면 사진은 경북 의성에서 불에 탄 검은 산과 푸른 밭을 한 앵글에 담았습니다. 문득 이번 사진설명에는 희망이나 회복 같은 단어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대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고통과 암담함을 뒤로하고 그런 표현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4월 22일

22일자 1면 사진은 이미 지난 17일에 결정이 돼 있었습니다. 법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2차 형사재판 출석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전직 대통령의 재판 모습은 지면에 박제해 역사적 자료로 남겨야 할 사안이지요. 윤 전 대통령이 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장면을 1면에 쓰자는데 이견은 없었습니다. 매번 이렇게 수월하게 1면 사진이 정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속보가 떴습니다.
외신들은 교황 선종을 대비해 미리 모아둔 자료사진을 대거 발행했습니다. 1면에 들어갔던 피고인 윤석열의 사진은 교황 사진에 바로 밀렸습니다. 교황의 과거 사진 중 병색이 없고 표정이 밝고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하는 듯한 장면을 1면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매일 1면 사진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날처럼 확실한 1면 사진 두 건이 다투는 날엔 좀 아쉽습니다. 급기야 발칙한 생각을 합니다. ‘교황이 내일 선종하셨으면….’
■4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전 세계의 애도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하루 외신으로 들어온 사진의 3분의 2 정도가 교황과 관련된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의 양으로 뉴스의 크기를 가늠한다면 올해 본 외신뉴스 중 교황 선종이 가장 큰 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많은 애도 사진 중에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앞 광장의 추모 인파를 1면 사진으로 골랐다가, 교황청이 발행한 교황 입관식 사진이 들어와 바로 교체했습니다. 검소한 목관에 누워 영면에 든 교황의 모습입니다. 교황의 시신을 보여주되 노골적이지 않게, 덜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진을 썼습니다.
■4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기사가 이날도 주요하게 다뤄졌습니다. 교황이 선종 전에 작성한 기고문이 공개됐습니다. 교황은 영국의 한 잡지에 “평화엔 전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종식을 호소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는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 중 유흥식 추기경을 거론하기도 했지요.
교황 과거사진, 교황 입관식 사진에 이어 사흘 연속으로 교황 관련 사진을 1면에 쓰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날 교황의 시신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일반 신자들의 조문이 시작됐습니다. 새로운 장면이라 1면 사진으로 정했습니다. 교황의 선종이 무게감 있는 뉴스인 걸 고려하더라도 사흘 연속 1면에 사진을 쓸 정도인가, 스스로 묻습니다. 누가 묻는다면, 1946년 창간된 경향신문은 가톨릭의 소유였다, 라는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월 2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습니다. 1979년 최규하 권한대행 이후 46년 만의 권한대행의 추경 시정연설이랍니다.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추경을 편성하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골든타임을 수차례 놓친 늑장 추경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행보에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며 간을 보고 있다는 지적도 따라붙었습니다.
1면 사진은 한 권한대행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는 동안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 의원들이 ‘졸속 관세협상 중단과 민생 추경 확대’를 촉구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의 뉴스적 가치도 분명 있습니다만, 교황 선종 사진의 나흘 연속 1면 게재를 막았다는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었습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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