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향하던 배에서 바다 뛰어든 이명준, ‘이것’ 알았더라면
2005년, 인도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참가하였다. 인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내 머리는 최인훈의 《광장(廣場)》 생각으로 꽉 찼다. 비행기가 벵골만 상부를 날아 인도에 접근할 즈음이었다. 인도를 향하던 주인공, 이명준으로 나의 온 정신이 빨려 들어갔다.
1977년 대학 입학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릴 때, 국문과에 재학 중인 한 고교 동문 선배께서 최인훈 작가를 소개하였다. 입학 전까지 최인훈 작가의 책들을 섭렵하였다. 고교 때 추천받아 읽었던 이광수, 김동리, 황순원의 소설과는 현저히 달랐다. 《광장》은 최인훈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내게 길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현수와 나누던 등굣길 대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소설 《광장》이 세 살 위 동급생인 전현수 씨와의 대화 소재가 되었다(* 전현수 씨는 불교에 기반한 정신분석을 창설하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이다). 집에서 대학 캠퍼스까지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와 전현수 씨는 최인훈 작가와의 이야기, 특히 《광장》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1978년에는 최인훈 작가의 문학 강연회에도 함께 갔다. 그때 최인훈 작가와 악수도 했다.
전현수 씨에게서는 그의 친구 A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도 들었다. A는 중학교 때 사르트르의 《구토》를 스무 번 읽고 학교를 떠났다. 학교를 떠나겠다는 아들의 결심에 토를 달지 않고 허락해 주었다는 부모까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들렸다. 학교를 떠난 후 독서하며 생각에 몰입하였던 A는 《광장》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문학 강연회에서 전현수 씨는 친구 A를 위하여 최인훈 작가에게 혹시 《광장》이 영화로 준비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광장》을 생각할 때마다 A 이야기는 내게 소설 속 또 하나의 소설로 떠오른다.
《광장》은 196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서울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대학에 다니며 성장하지만, 남한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목격하며 환멸을 느낀다. 그는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물질주의에 치우쳐 있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상을 품고 월북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 또한 그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북한에서는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사회주의적 이상이 현실에서는 권력층에 의해 왜곡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이명준에게 남한의 '광장'은 권력과 물질에 의해 더럽혀진 공간으로, 북한의 '광장'은 집단주의에 갇힌 공간이었다. 그에게 광장은 더 이상 인간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전쟁 포로 교환 시 이명준은 자신의 존재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진정한 '광장'을 찾기 위해 중립국 행을 선택한다. 그는 인도로 가는 배에서도 치열하게 자신과 투쟁하지만, 이념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고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광장》은 이명준의 죽음을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비판하고, 이념을 넘어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선배 교수의 선물...다시 만난 '광장'
1997년, 《광장》이 내게 다시 찾아왔다. 같은 대학의 선배, L 교수께서 김욱동의 신간 《광장을 읽는 7가지 방법》을 들고 오셨다.
L 교수와는 1992년 동료로 처음 만났다. 대단한 독서가셨던 L 교수와는 색다른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레비스트로스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L 교수께선 "아무리 연구에 바쁘더라도 책을 놓지 말라"고 권유하셨다.
무게가 실린 권유를 받았지만, 연구 활동에 매몰되어 책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내 사정을 아시면서도 L 교수께선 가끔 양서를 들고 내게 오셨다. 책 읽는 시간을 내기 힘들 때는 책을 들고 오시는 L 교수가 때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책 제목에 '광장'이 들어 있는 그날은 눈이 확 띄면서 반기게 되었다.

《광장을 읽는 7가지 방법》은 《광장》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7개의 주요 관점을 소개한다. 김욱동 씨는 이 소설을 이념의 갈등과 분단 문학으로, 주체적 인간과 존재의 탐구 문학으로, 내면적 심리와 정신 분석적 해석으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 시각으로, 중립국의 상징성과 선택의 문제로, 광장의 의미와 상징성으로, 그리고 역사적, 정치적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고 책에 제시하였다.
읽는 방법을 달리하면 소설 《광장》은 남북한의 체제 대립을 넘어 이념적 갈등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혼란을 탐구한 작품도 되고, 인간 존재의 의미와 자유를 탐구하는 실존주의적 소설도 되며, 이명준의 자아 분열, 남성과 여성, 부모와의 관계, 심리적 갈등과 상처로 인한 자살을 다룬 소설도 된다.
또한 유토피아를 꿈꾼 인간의 비극적인 이야기도 되고, 어떤 이념도 선택하지 못하고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이야기도 되며,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 이야기도, 그리고 남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이야기도 된다.
소설 한 권을 7번 읽게 만든 책
《광장을 읽는 7가지 방법》은 내게 특별한 흔적을 남겼다. 틈틈이 독서를 유지하도록 자극해 주신 L 교수의 영향이 제대로 통하였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을 따라 40대에 소설 한 권을 7번 읽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L 교수의 이런 자극은 은퇴하고도 칼럼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타골호는 흰 펭키로 말쑥하게 단장한 3000톤의 선체를 진동시키면서 한 사람의 선객을 잃어버린 채 물체처럼 빼곡히 들어찬 남지나해의 대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광장》의 마지막에서 최인훈 작가가 이명준이 사라졌음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명준을 자살로 마감시킨 데 대하여 최인훈은 숱한 질문을 받았고 비판도 받았다. 이명준이 "제3의 길"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누구든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1993년 대한민국 방송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을 보면서 나도 같은 질문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전쟁 포로 교환에서 중립국 행을 선택하고 인도에 간 76인들의 이후 행적과 삶을 추적한 걸작이다.
이 다큐에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소개되었다. 한국어를 잊은 사람도 있고 선한 영적 일에 봉사하는 분도 소개되었다. 그들의 일부는 포로 교환 4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만약 이명준이 그때까지 생존하여 "제3의 길"로 40년의 세월을 버티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큐 3부작을 보는 내내 나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감정 다스리기와 차에 몰두한 이후, 《광장》은 내게 우울증/공황장애와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를 생각나게 한다. 이명준의 치열한 고민을 가치 없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인도행 배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 생각하던 이명준은 투신 당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보인다. 누구든 과거 생각에 몰입하면 후회와 회한에 휩싸인다.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약물은 이런 경우 대개 유익한 역할을 한다. 유명인의 자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약을 먹더라도 급한 불을 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한국전쟁 직후에는 신경전달물질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약물이 없을 때였다. 약물 대신 작가가 차(茶)라도 등장시켰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고려 왕도 무거운 형벌 내릴 땐 '중형주대의' 했다
고려시대에는 「중형주대의」 의식이 있었다. 중형은 무거운 형벌, 주대의는 왕에게 고하고 참결을 요하는 의식이다. 사형 혹은 유배와 같은 참형이나 중형을 내릴 때 신하들은 내전의 남쪽 낭하에서 왕과 의식을 올렸다. 차를 임금께 올리고 또 왕은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였다. 이런 차의식은 중형을 내릴 때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데 차가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명준이 배 위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중형주대의」 의식을 치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가 목숨을 끊는 대신 "제3의 길"에서 미래를 살기로 결심하였다고 가정해 본다. 《광장》의 결말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유영현(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원장 (yhyoo@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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