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로 이어진 실험… 체르노빌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 [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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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사고 발생 전날인 1986년 4월25일 낮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실험을 준비하기 위해 원자로의 정지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정지시키고 저출력 상태로 변경했다. 이때 키예프 전력 담당자가 낮 시간대 전력 공급 유지를 요구해 일시적으로 실험이 지연돼 26일 오전 1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변경됐다. 그때까지 계속 저출력 상태로 장시간 안전장치가 꺼진 채 운전됐다.
장시간 안전장치가 꺼진 채 저출력 운전된 상황은 원자로를 불안정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실험 지연되자 테스트 모니터링을 위해 체르노빌에 와서 대기했던 도네츠크 전기 엔지니어팀은 당장 실험을 시작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고 돌아가겠다고 압박했다. 실험이 미뤄지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기에 불안한 상황임에도 결국 강행했다.
실험에서 원자로 안전장치 ECCS를 모두 해제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다. 출력이 갑자기 떨어지자 원자로 내부 균형이 깨졌고 출력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이에 알렉산드르 아키모프 선임 연구원은 실험을 중지하고 원자로를 정지시킬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나톨리 댜틀로프 발전소 부수석 엔지니어는 출력을 높여 실험을 속행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실험자들은 저출력 상태에서 수동 제어봉을 6개만 남기고 전부 뽑아 출력을 급격하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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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대해 당시 소련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려 했지만 낙진이 스웨덴까지 날아가면서 사고는 세간이 알려졌다. 전 세계에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소련은 뒤늦게 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발전소 주변 30㎞ 이내의 주민 모두가 철수했다.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뿌려진 지역에서 탈출이 완료된 때는 8월이었다.
사고 원인이 된 실험을 진행했던 이들은 사고 당일 즉사했거나 방사선 피폭으로 대부분 사고 발생 후 몇 주 사이에 사망했다. 다만 발전소장 빅토르 브류하노프와 실험책임자 댜틀로프는 살아남았다. 소련 정부는 이 두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겨 중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형사고소를 통해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댜틀로프도 피폭 피해자였으며 사고 발생 9년 후 세상을 떠났다.
김인영 기자 young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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