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403] 꽃과 잎새

벚꽃이 비처럼 내리던 날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프러포즈하는 연인을 보았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각자의 연인이 있는 두 남녀가 붐비는 뉴욕의 백화점에서 딱 하나 남은 장갑을 동시에 잡은 채, 한눈에 반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 반나절을 함께 보낸 후, 끌림과 죄책감 사이에서 여자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그녀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후 남자에게 책을 헌책방에 팔겠다고 말한다. 책이 돌고 돌아 당신에게 오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세렌디피티’는 우연한 발견이나 행운을 뜻한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각자의 연인과 헤어진다. 남자는 이후 7년이나 책을 찾아 헤매는데 엉뚱하게 이 책을 누군가에게 우연히 선물받는다. “우리가 함께 책방에 갈 때마다 당신이 이 책을 찾는 걸 봤어!”라는 말과 함께. 문제는 선물을 건넨 사람이 남자의 약혼녀라는 사실이다. 남자는 운명을 다시 찾기로 결심하며 일이 꼬인다.
이 문제의 책은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소설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 페르미나를 사랑한 가난한 청년 플로렌티노는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큰 부를 이룬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그녀를 만나는데 그것은 페르미나의 남편 장례식장에서였다. 그는 마침내 그녀에게 오랜 마음을 고백한다. 무려 51년 9개월 4일 만이었다.
운명적 사랑을 믿는다는 말은 허황된 걸까. 처음 남자에게 그 여자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연을 우연으로 놔두지 않고 7년이나 책방을 뒤졌고, 그런 행동이 결국 이 책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수없는 엇갈림 속에 서로를 찾아내는 기적은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 앞에 놓여야 할 말은 신의 선물인 ‘우연’이 아니라 노력해온 인간의 ‘의지’다. 벚꽃 아래에서 맺어지는 연인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부디 기억해야 할 건 꽃으로 사는 시간은 짧다는 것. ‘꽃’이 진 후, ‘잎’으로 사는 시간이 진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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