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개척 소설이 부추겼다, 히틀러 인종주의 광기

2025. 4. 2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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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반전의 세계사’] 카우보이와 나치
히틀러는 칼 마이(Karl May) 소설의 열렬한 독자였다. 어릴 적 그의 소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학교 성적이 떨어졌다고 변명할 정도였다. 총통이 된 후에는 『나의 투쟁』 인세가 들어오는 호주머니 돈으로 마이의 서부 모험소설을 대거 사서 동부전선의 독일군 병사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동부로 가는 독일 병사들에게 그것은 단순 오락거리 이상이었다.

독일 황제 카우보이 복장 파티에 참석
인디언을 추격하는 미국 기병대 모습을 묘사한 석판화 그림(1899년). 미국 독립전쟁 이후 넓고 싼 땅이 필요했던 백인 이주민들이 서부로 이동하면서 선주민 인디언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미국 정부는 인디언을 몰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무력에 의한 학살을 택했다. [중앙포토]
마이는 미국 서부, 중동·동양·중국·라틴아메리카 등을 무대로 한 모험소설을 주로 썼다. 총 2억 부 이상이 팔렸으니,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가였다. 야성의 미국 서부 평원에서 아파치 전사와 독일 식민개척자가 펼치는 마이의 드라마는 야만의 땅 동유럽과 아시아적인 슬라브인에 대한 나치 독일 군인들의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일깨우기에 좋았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파티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 마지막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일화에서 보듯이, 미국의 서부 개척은 독일 제국의 로망이었다.

빌헬름 2세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히틀러는 마이의 서부 개척 소설을 읽으면서 게르만 인종주의의 환상을 키워나갔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가 미지의 ‘남양’에 대한 일본 제국 청소년들의 개척 정신을 북돋웠듯이, 마이의 소설은 히틀러와 당대의 독자들에게 독일 식민주의의 낭만적 알레고리로 읽혔다. 나치를 피해 망명한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이 마이의 소설을 가리켜 “도덕적 위선과 야만을 영웅시하는” 독이라고 비난한 것은 조금 지나치지만, 일리가 있다. 전후 공산주의 동독에서 마이의 소설이 금서가 된 것도 알 만하다.

신세계 미국의 서부 개척 역사는 문학적 상상을 넘어 나치의 인종주의적 식민주의에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인류·지리학자 라첼(Friedrich Ratzel)은 젊은 시절 미국 서부를 여행하면서 백인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투쟁을 가까이서 목격했다. 미개한 ‘원주민’들이 문명화된 백인들에게 공간을 양보하는 것은 문명의 진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다.

훗날 식민지 나미비아에서 현장 조사를 하면서 라첼은 ‘미개한 원주민’을 몰아내고 ‘문명화된’ 게르만인의 거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활공간’ 개념을 발전시켰다. 라첼은 미국의 역사를 ‘대 서부의 식민화 과정’으로 해석한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의 프런티어 사관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라첼은 거기에 다윈의 진화론적 ‘생존경쟁’ 개념을 접목시켜 유럽계 이주민들의 인디언 절멸 정책을 정당화했다.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는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제노사이드의 역사이기도 했다. ‘운디드니’의 대학살처럼 잘 알려진 사건은 아니지만, 예컨대 북서부 캘리포니아에서 확인된 제노사이드만 7건에 달한다. 윈투·위요트·톨로워·포로·유록 등 캘리포니아 소수 부족에 대한 제노사이드는 어린이·여자·노인 등을 가리지 않고 죽이는 학살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은 대개 군대가 주역이었지만, 소규모 학살은 백인 이주민으로 구성된 자경대가 주역이었다. 이는 도쿄 대지진 당시 일본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을 연상시킨다. 이주민 공동체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이면 민주적일수록 학살의 강도도 더 컸다는 사회학자 마이클 만의 연구는 인종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의 잠재적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터너의 프런티어 사관은 미국 백인 문명의 서부 개척이라는 승리 사관이었다. 인디언 학살과 추방 등 백인 이주민들의 선주민 제노사이드가 미국의 성공 이야기로 도금된 것이다. 터너는 1896년 역사적 ‘서부’를 다룬 새로운 글에서 미국사의 ‘공간’을 설명하는 데 라첼의 글을 광범위하게 인용함으로써 역사적 공간을 인종화했다. 백인 이주민들 사이의 계급 갈등을 해소하는 안전판인 미국 서부의 개척 민주주의와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 나미비아는 이렇게 터너와 라첼을 통해 얽혔다.

서부 개척 당시 선주민 제노사이드의 경험은 미군의 필리핀 정복 전쟁(1898~1902)에서도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아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4000명의 미군은 약 25만에서 75만 명의 필리핀 선주민들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전쟁을 지휘한 총 30명의 미군 장군 중 26명이 이미 미 서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에 참여하여 군 경력을 쌓은 선주민 학살의 베테랑들이었다. 아리아인 선조에 대한 맥아더 장군의 자랑스러운 언급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그의 아들은 태평양 전쟁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였다.

1924년 라첼의 책이 란츠베르크의 감옥에 수감 중인 히틀러에게 왔을 때는 이미 미국 서부와 독일령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가공할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후였다. 히틀러는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한창 집필하던 1924년 라첼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경위도 예사롭지 않다. 뮌헨공대에서 지리학을 가르치던 칼 하우스호퍼는 라첼의 제자로 그의 식민주의적 지리학은 많은 학생에게 인기가 있었다. 훗날 나치 부총통을 지낸 루돌프 헤스도 그 학생 중 하나였다. 히틀러의 감방에 라첼의 책을 전한 것도 헤스였다.

히틀러가 라첼을 열독하던 1924년 미국은 새로운 이민법을 제정했는데, 그것은 ‘인종을 기준으로’ 삼아 동유럽과 남유럽의 달갑지 않은 인종을 제외하고 북유럽과 서유럽의 ‘노르딕’ 인종을 선호하는 이민법이었다. 미국은 이미 1850년대 매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의 아일랜드 이민자를 겨냥한 문맹 테스트, 1870년대 캘리포니아의 중국인 배척법, 1917년의 아시아 이민 금지구역 법 등 다양한 방식의 인종차별적 이민법이 있었다.

나치의 법 이론가와 법률가들이 미국의 이민법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예일대의 비교법 교수 휘트만(James Q. Whitman)에 따르면, 뉘른베르크법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나치 법률가들은 미국을 이념적 선도자 혹은 동반자로 여겼다. 미국 남부의 짐 크로우법과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법은 단순한 ‘거울 이미지’를 넘어 깊이 얽혀있었다.

뉴딜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시어도어 빌보 미 상원의원은 “니그로의 피는 단 한 방울이라도 백인종의 순수한 혈관에 흘러 들어오면 창의적인 천재성을 파괴하고 창조적 능력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했다. 나치는 유대인을 규정할 때 이 ‘한 방울 법칙’을 너무 극단적이라고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인종주의자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갔다.

최근 미 휩쓰는 인종혐오 놀랍지 않아
최근 미국에선 백인의 나라 부활을 외치는 트럼피즘이 득세하면서 인종 혐오가 심해졌다. [중앙포토]
1934년 6월 뉘른베르크법을 준비하는 주요 기획 회의에서 나치 법률가들은 미국 모델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다른 무엇보다 미국은 가장 과격한 나치 분파가 역설한 혼혈금지법의 모델을 제공했다. 우생학이 득세한 20세기 초 혼혈을 사회적 관습으로 억제한 경우는 많았지만, 법적으로 금지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다. 미 합중국의 30개 주가 인종 간 혼인을 민법상 무효라고 간주했고, 혼인을 감행하는 자는 가혹한 형사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조차 인종 간 혼인이나 성관계는 사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단지 다른 인종 간의 혼외정사를 처벌했을 뿐이다. 이에 비하면, 예컨대 메릴랜드주는 백인과 니그로, 말레이 인종의 혼인을 영구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에게는 18개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주법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결국에는 나치조차 미국의 ‘잡종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나치의 과격파가 볼 때도, 미국의 잡종법은 너무 과도한 것이었다.

악명높은 나치 법조인 프라이슬러(Roland Freisler)가 주도해서 만든 나치 법을 위한 ‘프로이센 제안서’조차 인종 분리를 인종 간의 ‘공적·사적 관계’ 모두에 적용하는 짐 크로우 법을 독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인종 명예훼손죄는 독일인과 유대인이 공개된 장소에서 사귀는 경우로 한정해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게 나치 법률가들의 견해였다.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미국의 인종법은 나치의 눈에 진정한 모범사례였다. 시민권의 이름으로 모든 인종의 평등을 규정한 수정 헌법 14조의 고귀한 민주적 이상은 이등시민법이나 혼혈금지법 같은 현실적 인종주의와 경합해왔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미국 정치는 놀랍지만 놀랍지 않다.

임지현 서강대 석좌교수. 서강대에서 서양사 전공. 대표 저서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 『기억 전쟁』(2019), 『대중 독재』(2004),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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