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베트남전 50주년 행사 참석 말라"…베트남 "종전일은 화해 상징" 반발

허경주 2025. 4.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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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이어진 양국 외교 관계 악화 가능성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하노이=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베트남에서 열리는 종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외교관들의 불참을 지시하자 베트남 정부가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미국의 불참이 전후 이어진 양국의 외교적 화해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팜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하노이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4월 30일(베트남전 종전일)의 승리는 양심과 정의의 승리”라며 “베트남 국민뿐 아니라 수많은 미국 가정에도 고통과 상실을 종식시킨 날”이라고 말했다.

팜 대변인은 “그간 베트남과 미국 두 나라 국민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양국 관계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다”며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용서와 평화, 화해와 치유라는 불멸의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팜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하노이 국제컨벤션 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이번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고위 외교관들에게 베트남에서 열리는 종전 5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방침을 내렸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대한 언급이다. 미국 정부는 외교 관계자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열리는 각종 토론회에 참석하려는 미국 참전용사에게도 별도 지원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마크 내퍼 주베트남 미국 대사는 당초 네덜란드, 호주 등 다른 나라 대표단과 함께 주요 기념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조치로 불참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 방침에 베트남 정부가 우회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낸 셈이다.

베트남은 북베트남(베트남민주공화국·월맹)이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을 함락시킨 1975년 4월 30일을 ‘국가 통일의 날’로 기념한다.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호찌민시에서 대규모 퍼레이드 등을 열 예정이다. 현지 정부는 미국 정부 인사와 참전용사, 국제 평화·반전 운동가 등을 대거 초청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은 참석 여부를 검토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하루 뒤인 1975년 5월 1일 당시 남베트남 수도이던 사이공 대통령궁 정문에 임시혁명정부(PRG) 탱크가 지나가고 있다(위). 50여 년이 지난 2025년 2월 20일 호찌민시의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호찌민=AP 연합뉴스

미국의 결정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종전기념일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과 겹치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취임 초기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패배’를 상기시키는 행사가 부각되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이번 결정이 수십 년간 쌓아온 양국 외교 관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트남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46% 고율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뒤 적극적 협상 의사를 밝힌 상황인데,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행사까지 외면하는 것은 ‘무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해 반미 연대 구축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더 큰 외교적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NYT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과거 공화당·민주당 행정부의 노력은 물론,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외교 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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