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책 한권이야"… 시니어 자서전 열풍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계기"
지자체 관련수업 속속 개설
60대~80대 강의실 꽉 채워
유명인 아니어도 누구나 써
소장용 인쇄, 출판기념회도
지난 22일 서울 강북구 강북문화정보도서관. 자서전 쓰기 수업을 들으려는 시니어들이 강의실을 채웠다. 6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한 가지.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한 권의 자서전에 담아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 꺼내기'를 주제로 열린 이날 수업은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박숙희 씨(76)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며 "과거를 반추해 보니 어렵던 시절도 뒤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7년째 자서전 수업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방수영 씨는 "참가한 시니어들은 자서전 쓰기를 통해 추억을 떠올리고 앞으로의 삶을 단단하게 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치열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행복했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자서전 쓰기'에 도전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유명인은 아니지만 인생의 황혼을 맞은 시니어들이 충실히 살아온 삶을 직접 글로 써 가면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자서전을 써본 이들은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긍정적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2015년 직장에서 은퇴한 강기영 씨(68)는 291쪽짜리 자서전을 펴냈고, 내친김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까지 집필했다. 자서전을 쓰면서 얻은 노하우를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신안산대에서 반월공단 중소기업 대표 등을 대상으로 자서전 쓰기 특강을 했다. 그 역시 자서전을 쓰면서 쓰라린 기억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타인에 대한 원망과 서투르고 미흡했던 스스로를 용서하는 계기가 됐다"며 "자서전을 쓰면서 인생을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에도 중년 못지않은 체력을 가진 시니어가 늘고 있는 데다 적은 비용으로도 쉽게 책을 낼 수 있는 출판 환경이 맞아떨어지면서 자서전 열풍은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나만의 책'을 원하는 만큼 소량으로 펴낼 수 있는 주문출판(POD) 방식이 대표적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자서전이나 시집 등의 출간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POD 출판물은 2010년 서비스 시작 이후 3만502권(2023년 말 기준)에 달한다. 1년 전보다 26% 늘어난 수치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표지 디자인과 본문 편집까지 직접 한다면 사실상 초기 비용은 '제로'다. 보통 본인이 필요한 부수 정도만 만드는 식이라 인쇄 비용 정도를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 자서전을 쓰는 것이 막막하다면 여럿이 함께 일정한 시간대를 정해놓고 꾸준히 쓰는 것도 방법이다. 강씨 역시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격주로 만나면서 3개월 동안 자서전을 썼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과 같이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으며, 정기적으로 독회를 한 것이 동기 부여가 됐다"면서 "혼자 썼으면 포기했을 텐데 함께 쓰기 시작한 것이 자서전을 완성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후에 자서전을 다시 정리해 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뭘 써야 하나'라고 구상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며 "당장 쓰지는 않더라도 생각을 메모하고, 정리하고, 수집하고, 자료를 모아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자서전을 쓰면서 시너지를 내려는 시니어들을 위한 강좌도 늘어나고 있다. 2022년부터 어르신 자서전 제작 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시 성동구는 지난해 11월 지역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8주 동안 자서전 쓰기 교육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9명의 시니어가 자서전 출간에 성공했다. 최고령 수강생인 서정복 씨(79)는 "자서전을 쓰기 위해 삶의 기억을 영상으로 남기는 시간이 있었는데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촬영 내내 울기도 했다"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왔던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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