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 책임 따질 새 셈법 “111개 기업이 28조달러 피해 유발”
기후 소송 등에 적극 활용될지 관심
지난해 5월 미국 버몬트주는 ‘기후 슈퍼펀드 법’(Climate Superfund Act)이란 걸 제정했다. 버몬트주가 겪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해 화석연료 회사들이 그 비용을 물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보다 1년 앞선 2023년, 버몬트주는 48시간 만에 최대 23㎝ 내린 비로 주요 하천인 위누스키강이 범람하는 등 ‘역대급’ 폭우·홍수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버몬트 주정부는 “기후변화 영향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적 여건을 갖춰야 한다”며, “그 비용을 버몬트 주민이 아닌 ‘오염 유발 기업’이 부담하도록 할 것”이라고 기후 슈퍼펀드 법 제정 취지를 밝혔다.
이로써 버몬트주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기후변화 피해에 대해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법적으로 부담하도록 한 미국 최초의 주가 됐다. 그 뒤 뉴욕주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제정됐고,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등에서도 비슷한 법안 심의가 진행 중이다. 물론 법 집행을 막기 위한 소송이 제기되는 등 반발도 일고 있다. 핵심 쟁점은 개별 기업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또 그에 따라서 얼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과연 밝힐 수 있느냐다. 2017년 이후 매년 100건 이상의 기후 관련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나, 오염원의 배출량과 경제적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로 지적되어 왔다.
이를 ‘기후 귀속’(climate attribution) 과학이라 하는데, 최근 발표된 한 논문이 기후 귀속 과학의 방법론을 더욱 정교하게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크리스토퍼 캘러핸과 다트머스대 부교수 저스틴 맨킨은 지난 23일(현지시각)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주요 화석연료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로 극심한 더위를 일으킨 데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논문은 어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활동이 없었다면 기후가 현재와 어떻게 달라졌을지 분석하는 방식으로 오염원의 배출과 기후변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단 111개 기업의 이산화탄소·메탄 배출이 야기한 극심한 더위가 1991~2020년 세계 경제에 28조달러(약 4경185조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분석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쉐브론, 엑손모빌, 비피(BP), 쉘, 사우디 아람코, 러시아 가즈프롬, 이란 국영석유회사, 멕시코 페멕스, 콜 인디아, 영국석탄공사 등 10개 화석연료 기업에서 발생했다. 이중 배출량이 가장 많은 5개 기업이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9조달러 규모의 손실을 초래했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쉐브론은 7910억~3조6천억달러 규모의 피해를 일으켰을 것으로 분석됐는데, 공동저자인 캘러핸은 이렇게 높은 비용마저도 “배출량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빈곤한 열대 지역에서의 영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무엇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쓰인 방법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에 의존해온 기존 방법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출 총량에서 시작하면 누가 얼만큼 영향을 줬는지 가르는 게 어려운데, 자신들은 “배출량을 직접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온난화와 그 영향을 특정 배출원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누구의 배출량이 어떤 피해를 야기했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 ‘종단 간 귀속’(end-to-end attribution) 분석이 앞으로 기후 소송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도 드러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연구가 제시한 새로운 방법론이 “ 담배 회사에 폐암 발병 책임을 물리거나 제약 회사에 아편 중독 책임을 물리는 것처럼 (기후변화와 관련한) 거대한 피해와 손실을 따지는 데에 비슷한 구실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버몬트주의 기후 슈퍼펀드 법 제정에 이번 연구의 초기 버전과 공동저자인 맨킨의 증언이 도움을 줬다고도 밝혔다. 줄리 무어 버몬트주 자연자원부 장관은 법 제정 과정에 “화석연료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학계, 전문가, 컨설턴트들로부터 배우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 슈퍼펀드 법에 따라, 버몬트주의 화석연료 기업들은 2027년 초 주정부로부터 기후 책임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는 서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화석연료 기업들이 낸 돈은 기후 피해에 대한 ‘보상’과 ‘적응’의 재원으로 쓰일 계획이다.
*논문 정보
Carbon majors and the scientific case for climate liability
www.nature.com/articles/s41586-025-08751-3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트럼프, 관세·방위비 별도 시사…“어떤 협상에도 군대 다루지 않을 것”
- [뉴스 다이브] ‘김건희 재수사’ 집중분석! 국힘 조여오는 건진법사·명태균 리스크
- 병상의 교황, 윤석열 계엄 때 “걱정…한국서 어떻게 그런 일이” [영상]
- 문 전 대통령 국회서 작심발언 “반동·퇴행 3년, 마음 편할 날 없었다”
- 검찰, 김건희 ‘도이치 무혐의’ 재수사…서울고검이 직접 맡는다
- [단독] 이재명 항소심 재판부, 대법원 최신판례로 무죄 선고했다
- “교황, 관습 깨고 둥근 탁자에 주교-평신도 나란히 앉혀…감탄”
- 문 전 대통령 ‘옛 사위 특채’ 의혹 사건, 중앙지법 형사21부 배당
- “심신쇠약이라…” 김건희, 국회 청문회 안 나온다
- ‘문재인 사위 월급=뇌물’ 기소, 검찰은 이게 통한다고 보는가? [뉴스뷰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