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에서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는다!
[골프한국] 4월을 보내면서 골프 연습장의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지난 겨울 거의 발을 끊거나 산골 마을에 소금 장수 찾아오듯 띄엄띄엄 연습장에 나오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동안 못 본 얼굴들이라 반갑게 인사하며 "이민 간 줄 알았어요!"하고 말문을 열면 "겨울엔 라운드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쉬었지요"라거나 "추울 때 운동하는 체질이 못되어 골프채를 놓았지요"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골프를 필요할 때 연습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다시 연습장에 나온 까닭이 궁금했다.
"라운드 약속이 잡혔나 보지요?"
"골프 끊었다고 해도 자꾸 나오라고 보채니 어떡하겠어요. 날짜 잡아놓고 무조건 나오라니 창피 안 당하려니 연습장에 나왔지요."
그러면서 열심히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 스윙한다. 한동안 연습을 못했으니 흡족한 스윙이 만들어질 까닭이 없다. 벼락치기 연습이라도 하면 창피는 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며칠 지나 만나 라운드 잘 했냐고 물어보면 어김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회생활을 위해 골프를 끊을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연습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계절 탓이 아니더라도 평소 연습을 게을리하다 라운드 약속이 잡히면 직전 벼락치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라운드 하루 전날 연습장에 가서 근육이 지치도록 연습하는 사람, 골프장에 도착해서 장시간 퍼팅 연습을 하는 사람, 심지어 라운드 직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땀에 젖도록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사람 등이 바로 벼락치기의 전형들이다.
그러나 벼락치기 연습을 해서 재미를 봤다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한다. 오히려 벼락치기 연습으로 라운드를 망쳤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골프에서 벼락공부는 통하지 않는다. 한두 시간의 벼락치기 연습은 한두 홀에서 효과를 거둘지 몰라도 4시간 이상 걸리는 18홀 전 라운드에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연습에 따른 지나친 기대감 때문에 욕심을 불러일으켜 평소의 리듬을 잃게 하고 혼란을 자초할 뿐이다.
벼락치기 공부만 아니라 벼락치기 레슨도 문제다. 골프 고수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도 라운드 중에 많은 것을 가르치려 덤비는 우는 범한다. 연습장에서도 잘 안되는 것을 현장에서 지도하려니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동반자들의 플레이에 보조 맞추기도 어려운 데 고수의 지도를 받아 실천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돌아가던 기계가 아예 멈춰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개선은커녕 난조가 계속될 뿐이다.
"골프에서 벼락공부는 안 통하는데…."
오래전 함께 라운드한 캐디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동반자 중 한 사람이 유난히 퍼트 실수가 많자 전반 9홀을 끝내고 연습그린으로 달려가 열심히 퍼팅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혼잣말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캐디의 한 마디는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로 나머지 동반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다. 그린의 성질을 느끼고 거리감이나 방향감각을 손에 익히기 위해 잠시 퍼팅연습을 하는 것은 좋지만 평소 게을리했던 연습을 한꺼번에 해치우려고 드는 것은 오히려 그날 라운드를 망칠 뿐이다.
갈증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물은 한두 모금이면 족하다. 한 양동이의 물을 욕심 내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은 한 바가지도 안 된다. 많은 골퍼들이 라운드를 눈앞에 두고 게을리했던 연습량을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듯 난리를 피우지만 그 짧은 시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소나기는 스며들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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