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이혜영이라는 레전드 배우로 볼 이유는 충분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민규동 감독의 신작 '파과'를 봐야 할 이유는 심플하다. 배우 이혜영의 존재감. '파과'는 '60대 여성'과 '킬러'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그린 영화다. 설명만 보면 갸우뚱할 수 있다. 그러나 60대 여성 킬러에 이혜영이란 얼굴을 놓았을 때, 이 이질적인 조합은 쉽게 납득이 된다. 연기는 물론, 그 얼굴과 그 눈빛, 그 목소리 등 이혜영이란 아우라 자체가 봐야 할 이유가 된다.
이혜영이 맡은 조각은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킬러집단 신성방역에서 '대모님'으로 불리는 레전드 킬러. 두려움과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존재였지만, 피할 수 없는 노화로 점차 회사에서도 한물간 취급을 받는 중이다. 행정 업무를 맡은 손 실장(김강우)은 업계에서 한창 떠오르는 중인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를 스카우트하고, 실수를 저지른 동료를 처리하는 업무를 맡은 조각의 현장에 투우를 백업으로 붙일 만큼 조각에 대한 의구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조각 역시 안다, 하루하루 자신이 계속 늙어가고 있음을. 은퇴를 고려하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바친 이 업을 놓지 못하고 건강의 문제를 회사에 숨기고 있다.

문제는 신체의 노화만큼 감정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다친 유기견이 신경 쓰여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결국 집으로 데려와 키운다. 작업 와중 입은 치명적 상처로 쓰러져 있는 조각을 데려다 치료해준 동물병원 강 선생(연우진)을 원칙대로라면 없애야 하지만 그러질 못한다. 없애기는 커녕 강 선생의 사연을 알게 되고, 강 선생의 어린 딸과 함께 밥도 먹게 된다. 어릴 적 조각을 킬러로 키워준 스승 류(김무열)와 만든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던 약속이 선연하건만 어느새 조각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계속 조각의 주변을 맴도는 투우가 강 선생 가족을 겨냥하며 조각을 옥죄어온다.
영화 제목인 파과(破果)는 흠집이 난 과실을 뜻한다. 멍이 들거나 흠집이 난 과일은 제값을 받기 어렵다. 맛은 여전하지만, 오히려 더 달기도 하지만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그렇다. 늙고 병든 조각의 신세가 꼭 파과 같다. 젊은 킬러 투우가 "누가 같은 값 주고 이런 걸 사먹겠어요?" 하며 과일가게에서 서비스로 받은 오래된 귤을 떨어트리며 발로 짓이길 때, 조각이 느꼈을 참담함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냉장고에서 썩어 문드러져 눌러 붙은 파과의 과육을 떼어내며 터트리는 조각의 감정은, 착실히 늙어가며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감정을 파고들 것이 분명하다.

킬러가 주인공인 만큼 온몸을 내던진 액션이 눈에 띈다. 이혜영이 60대의 나이에 직접 뛰고 구르고 나르며 맨몸액션부터 칼과 총을 이용한 액션,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칼끝에 사정을 두지 않는 차갑고도 효율적인 조각의 액션과 달리 투우의 액션은 격렬한 감정이 느껴지는 불과 같은 것이라 대비되어 보는 맛이 크다. 그리고 조각과 투우의 마지막 대결에서 이들의 서사와 함께 온갖 감정이 깃든 액션으로 쫄깃함을 선사한다. 감독이 이혜영이란 배우를 데리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겠다는 욕심도 살짝 느껴지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내가 감독이라도 그런 욕심이 생길 것 같으니까.
다만 그 마지막 대결을 그리는 방식에서 덧칠된 과잉은 못내 아쉽다. 조각과 투우의 과거와 현재를 플래시백으로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야기가 너무 질척거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알겠지만 늘어지는 느낌이다. 이혜영은 물론, 김성철의 애증 섞인 감정 연기와 눈빛이 썩 훌륭했기에 굳이 사족을 더하지 않았어도 충분했으리라 본다. 투우의 서사가 따로 스핀오프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란 건 알겠으나 과해지니 조각의 서사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소설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몇몇 문어체 대사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아쉬운 포인트 중 하나.

그럼에도 처음 말했듯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는 이혜영이란 배우로 충분하다. 이혜영은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전도연과 함께 강렬한 여성 액션 서사를 보여줬는데, '파과'에선 늙은 킬러가 되어 쓸쓸하고도 애잔한 모습까지 담아내며 영화를 오롯이 책임진다. 김성철의 놀라운 몰입도 한몫 더한다. 대선배와 팽팽하게 맞서 뒤지지 않은 존재감을 발산하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 배우가 얼마나 더 커 나갈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 외에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주연을 맡으며 주목받고 요즘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표남경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는 신시아가 어린 조각으로 분해 시선을 끌었고, 어린 조각과 묘한 감정선을 주고받는 스승 류 역할의 김무열, 모두에게 사연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따스한 강 선생 역의 연우진도 제 몫을 한다.
영화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내 아내의 모든 것' '허스토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섬세한 연출을 보인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러닝타임은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쿠키 영상은 없다. 4월 30일 개봉하는데, 액션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는 마동석 주연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도 같은 날 개봉한다. 60대 여성 킬러의 액션이냐, 주먹으로 악마를 때려잡는 어둠의 해결사의 액션이냐 관객들이 고민할 만하다.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최다니엘, '핸썸가이즈' 떴다...침샘 자극 식메추 기대 - 아이즈(ize)
- '믿듣데' 데이식스, 5월 새 싱글로 컴백 - 아이즈(ize)
- SM 떠난 웬디, 에센드 전속계약 새출발...프로미스나인과 한식구 [공식] - 아이즈(ize)
- 방송은 아쉬웠던 '굿데이', 음원으로 유종의 미 - 아이즈(ize)
- 전현무, "앞으로 경거망동하지 않겠다"...'사당귀'서 공식 사과 - 아이즈(ize)
- 이찬원 미담 터졌다...은사님도 인정한 따뜻한 청년 (편스토랑) - 아이즈(ize)
- 계륵이 된 배우 매니지먼트,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IZE 진단] - 아이즈(ize)
- KBL 사상 첫 '형제 감독' 맞대결, 장외 입씨름부터 코트 대결까지 '화끈' - 아이즈(ize)
- 오나라의 '빌런의 나라', 최종회 1.4%...시청률 새드엔딩 씁쓸 퇴장 [종합] - 아이즈(ize)
- '연프 지존' 이진주PD는 왜 '식당예능' 복귀했나? '대결! 팽봉팽봉’ [예능 뜯어보기] - 아이즈(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