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아트페어에서 만난 K-아트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5. 4. 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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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월드 아트 두바이 2025’에서 본 한국예술의 현 주소

“올해 한국 작가들의 참여가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은데요?”

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 전시장(DWC)을 걷던 중 낯익은 한국 작가들의 얼굴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왔다. 작년과 비교해 확연히 늘어난 한국 작가 이름이 적힌 캡션들을 보니 올해 한국의 존재감이 예년에 비해 더 뚜렷해진 것 같다.

매해 4월은 두바이의 예술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봄이 오면 한국에는 벚꽃이 피고 두바이는 예술의 향기로 가득찬다. 중동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 박람회 중 하나인 ‘월드 아트 두바이 2025’가 올해로 11회를 맞이해 더욱 대담하고 다채로운 색채로 돌아왔다.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예술의 현장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이번 박람회에는 65개국에서 400여 명의 작가들과 12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가해 총 1만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다. 유화, 수묵, 조각, 디지털 아트, 텍스타일, 공공설치미술까지 장르도 국가도 넘나드는 이번 전시는 ‘경계를 허물자(Breaking Boundaries)’는 슬로건을 내놓았다.
한 아랍인 연주자가 전시회장 안에서 피아노를 치며 분위기를 돋구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이 맡았던 주빈국(Country of Honour)을 올해는 중국이 넘겨받았다. 전통 서예 퍼포먼스와 현대 회화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실험이 펼쳐졌다. 수채화가 아닌 텍스타일 예술을 집중 조명한 ‘텍스타일 허브(Textile Hub)’, 두바이 도심에 대형 조형물을 전시한 ‘퍼블릭 아트 이니셔티브(Public Art Initiative)’ 등 체험형 콘텐츠가 더해지며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예술의 축제장이 됐다.
“65개국의 예술가들이 만든 1만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뜻깊고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400여 명의 작가들을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어 진심으로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밝힌 두바이 문화예술청 의장이자 함단 왕세자의 여동생인 셰이카 라티파 빈트 무함마드 알 막툼 공주의 X계정
두바이 문화예술청 의장이자 함단 왕세자의 여동생인 셰이카 라티파 빈트 무함마드 알 막툼(Sheikha Latifa bint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 공주는 “65개국의 예술가들이 만든 1만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뜻깊고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400여 명의 작가들을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어 진심으로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코리안 아트 패스(Korean Art Path)의 매력
올해 두바이에서 처음 개최된 코리안 아트 패스 행사는 4월 한 달간 두바이 곳곳의 전시장, 상업지구, 문화 공간 등 6곳에서 한국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한국 문화 프로젝트다.
그 화려한 예술의 물결 한쪽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목소리도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특히 올해 처음 개최된 한국 예술 프로젝트 ‘코리안 아트 패스 2025(Korean Art Path 2025)’의 일부 전시가 월드 아트 두바이 현장에서 함께 공개되며 눈길을 끌었다.

올해 두바이에서 처음 개최된 코리안 아트 패스는 4월 한 달간 두바이 곳곳의 전시장, 상업지구, 문화 공간 등 6곳에서 한국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한국 문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세희 스프링스15 대표는 “두바이는 화려하고 개방적인 도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화적으로 높은 장벽이 있는 곳이다. K팝처럼 대중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의 예술’을 소개하는 일은 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MOR(사랑)’으로 캔버스를 잔뜩 채운 적힌 김도임 화백의 작품을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코리안아트패스의 일환으로 월드아트두바이에 참여한 그는 이번 전시회에 붓글씨를 활용한 다양한 켈라그래피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다양한 세대와 스타일의 한국 작가들이 참여해 저마다의 시선으로 한국적 감성과 도시적 풍경, 그리고 개인의 서사를 풀어냈다.

이예림 화백은 물감을 주사기에 담아 뿌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HER LOGO CITY> 등 도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도시를 홀로 거니는 인물의 시선으로, 건축물과 건축물 간격을 주사기로 표현한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가명 ‘살랭’(Saleign)’으로 활동하는 윤채령 화백 역시 <Summer Greenery>를 포함해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과거에 비해 지금의 두바이는 초록이 살아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과 함께 도시가 숨을 쉬는 느낌이다. 두바이의 여름과 녹음을 일종의 찬사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익숙한 정서와 환상적 이미지가 공존한 작품도 있었다. 달빛 속 정원에서 말들이 뛰어노는,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Happy Memories> 작품을 출품한 김은희 화백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Happy Memories> 작품을 출품한 김은희 화백
“예전에 UAE 왕족의 연회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일반적인 파티가 아니었어요. 깊은 산속, 대자연 속에서 열렸던 그 연회는 말 그대로 ‘꿈속 풍경’ 같았고, 그때의 감정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언젠가는 꼭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죠.”
더 많은 한국 예술의 진출을
예술 전시회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누군가는 처음 갤러리와 계약을 맺는 출발점이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의 예술 인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곳이다.
예술 전시회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누군가는 처음 갤러리와 계약을 맺는 출발점이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의 예술 인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곳이다.

예술을 잘 모르는 초보자라 해도 그저 천천히 걷고, 마음을 끄는 그림 앞에서 멈춰 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충분히 즐겁다.

흥미로운 사실은, 월드 아트 두바이 2025와 중동의 또 다른 메이저 아트페어인 ‘아트 두바이 2025(Art Dubai 2025)’가 올해 정확히 같은 시기에 열렸다는 점이다.

예술을 잘 모르는 초보자라 해도 그저 천천히 걷고, 마음을 끄는 그림 앞에서 멈춰 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충분히 즐겁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공개 직전에 몰려들어 폰으로 찍고 있는 모습.
원래는 아트 두바이는 3월, 월드 아트 두바이는 4월이라는 식으로 전시 일정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올해는 3월에 있었던 이슬람의 금식달 ‘라마단(Ramadan)’의 영향으로 아트 두바이 일정이 4월로 미뤄지며 두 행사가 겹치게 되었다.

때문에 한편에서는 미술 시장의 중심지인 아트 두바이가, 다른 한편에서는 보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월드 아트 두바이가 나란히 열려 관람객과 미술관계자들 모두가 바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아직 ‘주류’라고 하기엔 부족할 수 있지만, 한국 작가들이 중동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매년 꾸준히 참여하고 그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였다. 단순한 참가를 넘어, 현지와 연결되고, 관객과 반응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한국 예술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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