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psycho), 마음이 마이 아파~ [말록 홈즈]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홀가분한 하루였습니다. 개학을 사흘 앞두고 묵혀뒀던 탐구생활을 다 마쳐버린 느낌. 엄두가 나지 않던 업무를 벼락치기로 끝냈고, 모처럼 옆팀 선배와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자유복 출근일이라 옷차림이 편합니다. 마치 음주용 전투복 같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지나간 일들이, 기우는 술잔과 더불어 술술 흐릅니다. 두 명 자리가 좋은 이유입니다. 이야기 주제가 새지 않아 시원스럽습니다. 더욱이 맞은편 선배는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는 분입니다.
살짝 일찍 자리를 마쳤습니다. 봄이 오나 싶더니 햇볕에 여름내음이 실립니다. 8시를 지났는데, 아직 어둠에 푸름이 스며 있습니다. 기분 좋게 마셨는데, 왠지 술이 살짝 아쉽습니다. 카톡 리스트를 훑었지만, 금요일 이 시간에 갑자기 만날 벗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혼술집에 와버렸습니다. 아니,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식탁이 몇 개뿐인 작은 선술집, 푸릇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도란도란 추억을 만듭니다. 주방 앞 작은 자리에 앉아, 술잔을 텁니다. 초장을 살짝 찍은 데친 오징어가 쫀득합니다. 별 하나에 정겹고 예쁜 이름들을 헤던 윤동주 시인처럼, 술 한 잔에 그리운 벗들에게 톡을 보내봅니다.
“그래, 난 잘 살아. 건강하자. 언제 같이 한잔해야지.”
상투적인 말들이지만, 이렇게 살아있단 걸 확인하니 그걸로 좋습니다. 기대 않던 톡에 전화가 걸려와 목소리를 듣는 게, 이젠 꽤 기분 좋은 행운입니다. 놀아줄 벗이 드뭅니다. 이제 나는 확실히 젊지 않습니다. 소주맛이 쌉쌀합니다.
“이것도 좀 드셔보세요. 저쪽 손님들 안주 만들면서 조금 넉넉하게 해봤어요.”
‘부치기’입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춘천에선 부침개를 부치기라고 불렀습니다. 아삭하게 씹히는 배추와 투박한 듯 간이 옅은 밀가루부침의 마리아주가, ‘군바리 시절’ 휴가 나와 마침 같은 기간 휴가 나온 동네친구를 만난 듯 소박하게 정겹습니다. 취했나 봅니다. 십수 년 전 하고 놀던 ‘신의 물방울’ 코스프레가 튀어나오다니...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순간입니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가 게임을 하는데요.”
연두색 셔츠에 갈색 포니테일(ponytail: 조랑말 꼬리 헤어스타일).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직장 초년병 같습니다. 살짝 발그레한 얼굴에 취기와 객기가 스민 듯 보입니다.
“네?”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저희가 내기를 했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회사원 아니죠?”
당혹스럽습니다. 내가 실직자나 무직자로 보이나? 늙고 병들어 보이나? 건강 관리 좀 할걸. 그런데 내가 왜 첨 보는 젊은이들 때문에 자괴감 느끼고 괴로워하지? 피식 웃으며 되묻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으로 보여요?”
포니테일 젊은이가 조심스레 묻습니다.
“글 쓰는 분이죠? 작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 친구가 말하는 글에는 보고서도 포함되나? 수필 비슷하게 가끔 끄적대긴 하지만, 아직 작가라고 보기에는 서툴고 어설픈데.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애써 쌓은 취기가 날아가 버리잖아.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데.”
“와, 어떡해, 어떡해! 저희 자리에 잠깐만 와주시겠어요?”
엥? 일이 커지기 전에 튀어야 합니다. 스마트폰 검색 한 번이면 밑천 죄다 드러납니다.
“고맙습니다만, 일어날 시간이라서요. 맛있게 드세요.”
“악플 달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상황? 사이코 어린이회 번개모임인가? 대체 어디에 악플을 단다는 거지? 술이 깨버렸습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아, 이러다가 나도 사이코가 돼버릴 것만 같습니다.
“정신이 마이 아파~”

프시케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영혼의 여신’이자 사랑의 신 ‘에로스(Eros)’의 부인입니다. 엄청난 미인이라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질투를 받았습니다. 아프로데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프시케가 용모가 흉한 남성과 사랑에 빠지도록 사랑의 화살을 쏘라고 말하고, 에로스는 실수로 자신이 쏜 화살에 맞아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죠. 에로스는 로마신화에서는 ‘큐피드(Cupid)’로 불립니다. 에로스는 ‘사랑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erma’,에서, 큐피드는 ‘욕망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upere’에서 왔습니다.
왜 같은 신의 이름이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다르게 불릴까요?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토대로 자체적인 신화와 예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유피테르’로, 신들의 여왕인 ‘헤라’는 ‘유노’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넵투누스’로 불리는데, 본질적 의미는 사실상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이코 젊은이가 악플 안 쓸 거란 확신을 얻고 나서요.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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