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관협업 공립 대안학교 전남 솔가람고등학교 [문화발상지 남도 학교기행]

이건상 기자 2025. 4. 25. 11:4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상하라, 다르게 상상하라!" 본관 현관에 구호 새겨
‘존재에 감사!,인류에 기여’ 등 교훈으로 …학교 같지 않고 평화롭고 아늑
세계적인 마을교육공동체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공동체(Findhorn Foundation)

#알묘조장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고사성어는 『맹자』에서 유래한다. 맹자는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4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사람으로 그가 양해왕, 공손추 등 주변 정치인 또는 제자들과 나눈 일종의 정치 문답 또는 어록을 모은 것이 『맹자』이다. 모두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어머니 급(伋) 씨가 맹자를 성장시키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제자 공손추와 더불어 '호연지기'를 주제로 토크쇼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란, 다소 낯선 표현도 새겨둘 만한 화두이다. (춘추시대) 송나라 어느 농부가 더디 자라는 자신의 '농작물 싹을 뽑아 올림으로써 성장을 조장했다'는 우화인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호연지기가) 무익하다고 버려두는 것은 싹의 김을 매지 않는 경우일 것이고, (호연지기를) 무리하게 조장하는 것은 싹을 억지로 뽑아 올리는 경우일 것이네. 이는 한낱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것이라네."라고 하였다.(『맹자』 <공손추> 장구) 성장 단계를 고려한 교육의 필요성, 교육의 장기적 관점 그리고 학습의 주권이 학습자에게 있다는 점을 두루 강조한 훈화이다.

#우리의 전통 교육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우리 민족보다 더 강한 사례가 또 있을까. 몰락한 가야계 왕족 김유신을 주색에서 구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었던 신라 왕족 출신 어머니 만명부인이 그러하고, 조선 중기의 서예가 석봉 한호에게 학문에 대한 집념을 몸소 가르치려했던 모친 백씨의 가래떡 썰기 시전 설화가 그러하다. 참고로 백 씨의 당호가 백인당(白忍堂)이다. 그렇다. 교육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다. '맹모삼천지교'에 빗대자면, 앞선 보기는 '김모편달지교(金母鞭撻之敎)'일 테고, 뒷선 보기는 '한모절편지교(韓母切䭏之敎)'라 할 것이다.

이른바 공시족이었던 남편 온달을 위해 글공부와 무예를 가르쳤다는 공주 평강의 일화도 전한다. 학습과 무예 실습은 물론 장수로서 품격까지 아우른, 말 그대로 전인교육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에 이미 비대면 원격교육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강진 유배 18년 동안 100여 통의 편지를 통해 아들 학유를 비롯한 자녀들의 학업과정을 점검하고 촉진했던 정약용의 일화이다.

심지어 그는 "때가 되면 출사하여 임금을 보좌하라"는 구체적인 학습 목표까지 제시하였다. 퇴계 이황은 아들과 제자들로 하여금 함께 어울려 공부하기를 권장하였다. 좋은 벗들과의 동문수학은 서로에게 선한 자극이 되어 능률도 오르고 동료학습 효과도 있다고 하였다.

한편 군왕 영조의 교육 방식은 다소 학대형이었다. 적장자가 아닌 자신의 태생적 불안 요인을 후임자 아들에게는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강한 군주상' 실현하려는 의지가 투사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1958년 이찬갑이 창립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2024년 가을걷이

#마을은 학교를 키우고

교육의 출발은 애초에 가정이었고 부족이었다. 교육을 위한 공간이나 시설이랄 것이 따로 없었겠지만 가정의 공동체 밥상머리, 부족의 경계였던 들과 산천이 그대로 학교였을 것이다. 집안의 어른, 부족의 장로가 교사였을 테니, 오늘날 풀이로는 마을학교라는 용어가 딱 적합하다. 이후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분업화·다양화되면서 제도교육이 등장하고 모둠살이가 강조되었다. 그즈음 가정과 부족의 역할이 학교에 위임된 것이다.

1면(面) 1교(校), 한 마을에 하나의 학교(보통학교) 설립하겠다는 정책은 3·1운동 이후 일제가 내놓은 회유책으로 1928년 학제 개혁으로 법제화되었다. 일제의 통치 전략이며 식민의 소산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 "조선인 본위 교육 실시하라!", "노예 교육 폐지하라!" 등과 같은 구호가 등장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1907년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 세운 학교가 오산학교이다. 비밀 결사인 신민회의 강령에 맞춰 교육 계몽, 신식 학교 설립 그리고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결행이었다. 제석산, 황성산 등 주변의 다섯 산이 에두르고 있어 오산(五山)인데, 오산교회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마을학교로서 이후 두고두고 민족 교육의 발원이 되었다.

그는 이런 마을학교가 100개 정도 운영되면 민족의 운명이 바뀔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함석헌과 오산학교 동기이기도 한 조카 손자 이찬갑(이승훈이 조부의 동생, 즉 종조부이다.)은 뒤이어 1958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 풀무골에 풀무고등공민학교(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건립함으로써 오산학교를 전승하였다. 마을학교이자 현대적 의미의 대안교육의 시초라고 할 것이다. '풀무'란 농기구 등을 제조하는 대장간에서 화덕에 센 바람을 주입하는 송풍 기구인데, 이 마을이 대대로 대장간이 운영되었던 곳이었다. 이찬갑은 한국사 학계를 대표한, 『한국사신론』의 저자 전 서강대 이기백 교수의 부친이기도 하다.

영국의 식민 지배 당시 인도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고 믿었다. '국가 없는 민주주의'가 그가 꿈꾸는 이상 사회였는데,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 '마을 스와라지'였다.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며 평등성을 강조한 독립적인 마을 단위 자치 공화국을 말한다. 민중들의 삶에 근거한 풀뿌리 마을정부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을 계승하여 양희규 등이 경남 산청에 개창한 학교가 간디학교(1998)이다.
 

솔가람고 수업 현장

#지역사회 모둠살이 학교

사범대학 재학 시절 <학교와 지역사회>라는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까마득한 기억이고 강의 내용이 소멸되었지만, 이후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동안 '지역사회에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궁리를 할 때 생각의 씨앗이 되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하여 협업하는 교육 방식이다. 공교육이나 학교교육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다양한 교육 콘텐츠, 현장에서 빚어진 전문성, 성장 촉매, 사회적 서비스 등을 지역사회가 보완해 주는 구조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도 이미 공교육 대체재로서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코틀랜드에 1972년 설립된 생태마을 핀드혼 공동체(Findhorn Foundation)를 들 수 있겠다.

성격과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우리도 이러한 취지의 마을교육공동체, 모둠살이 학교가 설립되어 비교적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전국적으로는 세종시 해밀초등학교, 경기 화성시 송린중학교, 충북 괴산군 송곡초등학교, 충남 홍성군의 풀무학교, 아산시의 거산초등학교 등이다.

전남에서는 목포 유달리행복마을학교, 여수 좌수영마을학교, 강진 온벗마을학교, 영암 희문화창작공간, 광양 사라실형형색색마을학교, 곡성 협동조합 뚝방, 영광 상사화 피는 마을학교, 완도 꽃아 책아 마을학교, 화순 아트포마을학교가 있으며, 광주시에서도 온마을이음학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숙제

마을학교 또는 마을교육공동체는 독특한 지역성과 문화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그대로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교원이라서 창의적일 수도 있지만 세부 교육과정 설계 혹은 교육의 기술적인 측면은 더 경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마을학교 참여자들 형편이 그 자체가 삶이 아니라 여가나 봉사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내 전문 인력의 부족은 다양한 활동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울러 교육과정이 삶을 성장시키는 차원으로 이어지지 못하다는, 체험활동 수준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숙고해야 할 부분이다. 퇴직교원을 비롯한 전문 강사진 구축, 지자체 혹은 교육청 지원으로부터 경제적 자립, 인근 지역과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확장, 일회성 체험을 넘어 삶의 역량을 키우는 체제와 지속성 확보, 참여자들의 강한 커뮤니티 구축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협업 대안학교

마을은 삶이 실제하는 곳이다. 마을은 삶의 출발이고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마을교육에서 삶의 실제성 확보와 현장성 회복은 매우 중요하다. 마을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2016년 교육부에서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 공모' 결과를 발표하였다. 강원도의 노천초, 대구의 해올고, 경남 김해의 금곡고와 남해 보물섬고 그리고 호남·충청권에서는 유일하게 담양의 솔가람고 등 5개 학교가 선정되었다. 교육부에서 주관한 이 공모 사업은 매우 이례적이며 혁신적인 구상이었다. 학교 설립 주체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즉 공립인데 운영은 민간 수탁자가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교원 자격이 없이도 민간 전문가들이 학교교육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이다. 공교육의 혁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파격성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전남의 경우 3년 정도 논란이 이어졌다. 논란의 핵심은 막대한 공적 예산이 투입된 공립 학교를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사유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결국 민간 전문가들의 학교교육 참여는 보장하되 교육청이 운영을 담당하는 '민관협업형 대안학교' 형태로 합의에 이르렀다. 2019년부터 약 2년간 부지 학보와 시설 재건축 및 교육과정 설계를 거쳐 2021년 담양군 봉산면 옛 봉산초등학교양지분교 폐교 터에 솔가람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상상하라, 다르게 상상하라!

솔가람고의 교육 이상과 가치, 운영 방식은 기존의 대안학교에 비해 더욱 이색적이며 독특하다. 미래 학교, 미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문명의 전환기를 맞아 공교육의 벽을 넘어선 진보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학교의 구조적 환경과 교육과정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할까? 솔가람 교정에 들어서게 되면 이런 오래되고 익숙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법령은 본질적으로 규제적 규범이다. 대안교육 관련 법령 또한 유연하거나 허용적이지 않다. 솔가람고는 이러한 법령의 허용치를 어떻게든 최대한 활용한 사례였다. 설립 준비 단계에서부터 이런 시도를 과감하게 적용한 것이다.

큰 원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의 운영은 구성원의 합의된 철학, 공동선(共同善)을 기본으로 한다.
▶교과 교육은 공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미래 지향성을 담아내도록 한다.
▶예산은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에 직접 투자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공방교육은 학생들의 생애 창업 능력이 길러지도록 한다.
▶학교의 시설과 환경은 자연치유가 가능하도록 한다.
▶생활교육은 자유와 평화를 바탕으로 공공 시민성이 길러지도록 한다.
 

솔가람고 동아리 활동

솔가람 학생들은 말한다. "학교 같지 않고 평화롭고 아늑하다." "자유롭고, 힘들고, 재미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얼 해야 할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학교가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해답을 찾도록 기회를 줄 뿐이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성인이 되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상상하라, 다르게 상상하라!" 본관 현관 이마에 새겨진 구호이다. '존재에 감사하라!'와 '인류에 기여하라!' 3가지를 교훈으로 삼았다. 일반 학교에서 운영할 수 없는, 학생들이 변화와 성장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독특한 프로그램들이 흥미를 끈다.

최고의 전문 직업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내면화하는 '휴먼-라이브러리', 1주일 이상 전국을 소집단별로 여행하며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길 위의 학교 '로드 스쿨', 상상력과 창의력이 번득이는 '상상 공작 전람회', 이색적이고 창의적인 실험 공방 '생애 창업 담쟁이센터' 등이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교육은 미래 행위

신설학교나 대안학교 부지를 물색하면서 대체로 폐교 부지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경제적 효용과 비용 절감이 우선이었겠지만 폐교는 폐교를 낳을 우려가 크다. 학령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등 폐교의 사회적 조건을 떠올려보면 유추하기가 어렵지 않다.

교육은 미래 지향적 행위이다. 경영의 관점에서 봐도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학교가 다시 폐교의 늪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학교는 더더욱 미래학교여야 한다. 학교에 강력한 미래 지향성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 제약과 제도의 한계에 맞서서, 관성과 익숙함을 무너뜨리는 호연지기, 실험과 모험적인 미래교육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마을과 세상 곳곳이 학교이고, 삶의 현장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교과서이다.

*필자는 2019년부터 약 2년간 '민관협업 공립 대안학교' 개교 준비 과정에 참여하였다. 이어 2021년 개교를 거쳐 금년 2월까지 4년 동안 솔가람고등학교를 운영하였다. 동료 교직원들과 어깨 걸며 나누었던 대안교육을 위한 힘찬 함성과 뜨거운 실천, 낱낱의 아이들 표정이 아직 활동사진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글이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선명완 담쟁이대안교육연구소장

선명완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