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아직도 여대로서 할 일 많아… 새로운 100년 준비"

강지수 2025. 4.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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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제18대 이화여대 총장 인터뷰]
'최초 여성 전문학교' 이화여전 100주년
첫 이공계 총장... "AI 시대 교육 고민해"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 이화여대 제공

"여자대학은 단순히 '여성 전용'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아직도 이화여대는 여자대학으로서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여대'의 존재 이유를 질문받은 이향숙(62) 이화여대 총장의 답변은 명확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동덕여대와 성신여대가 각각 남녀공학 전환 시도와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 허용으로 학생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을 때 신임 총장으로 선출됐다.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자전문학교(1925~1945)가 문을 연 지 꼭 100년이 된 24일, 이 총장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 이유다.

이 총장은 여대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다. "여전히 유리천장이 있습니다. 여성 인재가 마음껏 도전하고 성장하며 연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여자대학은 반드시 필요하죠. 여성의 기회를 확장하는 곳으로서 교육적·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화가 걸어온 100년의 역사는 가시밭길이었다. 1886년 단 한 명의 학생으로 문을 연 이화학당은 1910년 대학과(科)를 설립하며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일제 치하에서 '종합대학'으로의 승격은 불가능했다. 조선인들의 대학 설립이 금지된 탓이다. 대신 전문학교로 다시 문을 열어 문과, 음악과, 가사과 교육을 제공하며 여성 인재의 산실이 됐다. 당시 여아들에게는 초등교육의 기회조차 없었기에 반대 여론도 거셌다. 이 총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시대적인 제약 속에서도 20여 년간 사회를 변혁시킨 여성 지도자를 709명 배출했다"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한국 최초의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등이 이화여전 졸업생이다. 이화여전은 해방 직후인 1946년 국내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 이 총장은이화여전의 100년을 '도전과 개척, 미래에 대한 꿈과 책임의 역사'라고 정의했다.

이화여전 문과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화여대 제공

이화여대는 재학생(학부·대학원) 수 기준(2만2,000여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자대학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혐오 극복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성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순위는 146개국 중 94위로 하위권에 그쳤다. 이 총장이 "지금이 여대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시기"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여대에선 성별 고정관념 없이 학생들이 각종 활동을 주도하며 오롯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 리더를 길러내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다양성과 포용,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이 요구되는 시대예요. 기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진정성이 반드시 필요하죠." 수학을 전공한 이 총장도 그런 리더 가운데 한 명이다. 2017년 여성 최초로 대한수학회 회장에 선출되며 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최근 '대학 전체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이 총장은 첨단기술 혁신과 학령인구 감소 등이 대학의 본질을 흔드는 상황에서, 여성 인재만의 경쟁력이 분명이 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이나 공학 분야는 남성이 우세한 분야가 아닐까 하지만, 여성에게 분명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 감수성, 관계적 사고, 협업과 윤리적 판단 등 여성이 타고난 역량으로 발휘해온 요소들이 기술력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 총장은 이화여대 역사상 첫 과학기술계 출신 총장인 만큼 포부도 남달랐다. 그는 '인간중심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교육을 통해 AI 시대 여성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게 이 총장의 목표다.

2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열린 '이화여전 설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장명수(오른쪽 두 번째) 이화학당 이사장과 이향숙 총장, 전직 총장 등이 이화역사관 학생 도슨트 설명을 듣고 있다. 전시는 다음달 31일까지 이어진다. 이화여대 제공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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