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로에 버려졌던 강아지, 방송 이후 관심 끊긴 13년의 이야기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아니, 순순아 너 말고!"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보호소 '온센터'. 이날의 주인공을 찾아온 '뒷조사 전담팀'은 처음 맞이한 상황에 다소 난감했습니다.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룸메이트가 더 손님을 적극적으로 맞이한 겁니다. '순순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처음에는 낯선 이들의 방문을 짖으며 경계했지만,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습니다.
장난감을 주며 놀이를 시도할 때도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순순이였습니다. 그러자 뒷조사 전담팀을 안내한 활동가도 멋쩍은 웃음만 보였습니다. 정작 이번에 만나기로 약속한 주인공은 '진진이'(14). 진진이는 순순이 뒤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기도 부끄러워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천천히 다가가보려 해도 뒷걸음질 치기 일쑤고, 쓰다듬으려 하면 움츠리기만 했습니다. 짧은 시간 만남으로는 진진이와 친해지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무엇이 진진이를 그렇게 움츠러들게 만들었을까’, 이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산책을 나서서도 낯선 사람이 곁에 있는 걸 느끼기라도 한 듯,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진진이를 보다 못해 결국 한 발짝 떨어져서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견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진진이의 과거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건 죽으란 소리”.. 깊은 도랑에 버려진 강아지들
지난 2011년 3월, 충남 당진시. 주변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발을 헛디뎌 추락할 것만 같은 깊은 농수로가 있었습니다. 아직 겨울이 미처 떠나지 못한 그늘진 농수로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 두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도저히 강아지들이 제 발로 농수로에 들어갔으리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다 큰 성인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할 정도로 깊은 농수로에서 생후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강아지들이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주민 한 사람이 방송국과 동물보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직접 현장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농수로 깊이가 2m는 족히 되겠더라고요. 거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헤매고 있는데, 최초 발견자분이 사료를 주지 않았다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동물관리국장
직접 구조팀이 내려가서 살펴본 강아지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부 상태. 이제 막 유치가 나기 시작한 새끼 강아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털은 듬성듬성 빠져 있었고, 피부는 말라서 갈라져 석회화가 될 정도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강아지들은 구조팀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앞서가던 강아지들은 뒤돌아 구조팀을 바라보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한 강아지들의 행동에 구조팀은 급히 뒤를 따라갔습니다.
강아지들을 따라간 곳에서는 또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누워 있었습니다. 이미 숨을 거둔 강아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강아지들은 사체 주변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마치 같이 데려가달라는 듯한 모습에 구조팀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현장에서 구조에 참여한 박정윤 수의사(올리브동물병원 원장)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정말 나쁘다”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박 수의사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으로 강아지들을 옮겨서 보니까 모낭충증이라고 확진이 됐어요. 피부가 급격히 나빠지는 질병이기는 하지만, 불치병이라거나 죽을 병이 아녜요. 치료만 하면 고칠 수 있는 질병인데 고의로 유기한 거잖아요. 유기한 것만으로도 문제인데 사람도 쉽게 오르내릴 수 없는 농수로에다 내다 버렸다는 건 거기서 죽으란 소리잖아요.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동물관리국장
조 국장은 13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강아지들이 사람을 향해 도와달라는 듯한 행동을 보여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사람에게 버려진 애들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모습이 참 마음 아팠다”고 돌아봤습니다.
피부병, 해외입양 무산.. 그리고 끊어진 관심
그렇게 구조된 두 강아지들은 ‘진진’, ‘당당’이라는 이름을 받고 동물자유연대의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보호 첫 2년 동안은 피부병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조 국장은 “그동안은 피부가 좋아졌다가 재발하기를 반복했다”며 “치료에 집중하면서 긴 시간 지켜보자 괜찮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진진이와 당당이를 찾는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훌쩍 커버린 진진이와 당당이를 받아줄 만한 가정환경이 많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두 친구에게 해외 입양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20년, 두 친구가 10살에 가까워졌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찾아올까 싶은 마음으로 활동가들은 진진이와 당당이의 출국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당당이는 해외 출국이 가능했지만, 진진이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수의학적 소견이 나온 겁니다. 조 국장은 “신장 쪽에 문제가 발견됐다”며 “그래도 나이가 젊다면 방법을 찾아봤을 텐데 나이도 있고, 컨디션도 당당이에 비해 좋은 편이 아니라 확신을 내릴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당당이는 해외에서 가족을 만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함께 떠나지 못한 진진이는 여전히 온센터에 남아 다른 개들과 함께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 국장이 매일 출퇴근하며 진진이를 마주한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습니다.
사실 대형견들 대부분이 진진이와 비슷한 처지입니다. 어릴 때 구조됐어도 한국에서는 입양까지 갈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아요. 진진이도 구조 초기에는 약간 관심을 받나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입양이 무산된 뒤에는 아무도 찾지 않았어요. 결국은 해외 입양을 가는 게 방법이고, 그마저도 가지 못하면 여기서 생을 마감할 것을 각오해야죠.
그래도, 마지막에 마지막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돌본다 해도 가족이 한 강아지만을 바라보며 돌봐주는 환경만은 못하거든요.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동물관리국장
해외입양이 무산된 지도 벌써 4년. 그 사이 진진이는 심장에 좋지 않은 징조를 보여 약을 먹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건강에 큰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지만, 노견 중에서도 만만찮은 나이인지라 점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진이가 아픈 뒤로는 낯선 사람 앞에서 겁을 좀 먹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적응하고 먼저 다가갈 수 있거든요. 물론 먼저 다가간다고 막 천방지축 뛰는 건 아녜요. 얌전하게 지내는 스타일이니 대형견이라는 이유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생을 다할 때까지 돌봐주실 분이 있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진지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조영연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동물관리국장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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