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한국어 계속 가르칠 수 있도록 [사람IN]

김영화 기자 2025. 4.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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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박미소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려면 험준한 골짜기를 몇 번이고 넘어야 한다. 하나·둘·셋과 일·이·삼을 구분해야 하고, ‘주다’라는 동사는 상황에 따라 ‘드리다’ 혹은 ‘주시다’로 써야 한다. 모국어 사용자들에겐 너무 당연해서 왜 그런 것인지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어학당에 모인 외국인 학생들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지자 이창용씨(52)가 칠판에 문법 도식을 척척 그려낸다. 복잡했던 문법이 조금이나마 일목요연해진다. 국문학 전공자인 그도 1999년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 배운 것들이다. 오랜 숙련이 필요했다. 올해로 22년 차, 서울대 언어교육원 강사인 그의 제자 중엔 방송인 타일러 씨도 있다.

그간의 수업 노하우를 모아 2021년 책 〈한국어 수업 이야기〉를 냈다. 추천사를 써준 박노자 교수가 한국어 선생님에 대해 표현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문화적 타자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교량.” 그사이 한국어의 위상도 달라졌다. 국내 거주 외국인 265만명(전체 인구 중 5.17%, 2025년 3월 기준)에게 한국어는 ‘취미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서툰 한국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 위험을, 이주 배경 청소년에겐 학업 중단률을 높인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어 수업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활동 중인 한국어 교원은 1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씨는 한국어 교원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픽(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가 100만명이 넘었다거나 한국어가 해외로 수출되었다는 등 ‘국뽕’ 이야기를 할 때만 조명될 뿐 한국어 교육 노동자로서의 삶은 잘 드러나지 않아요.”

이창용씨는 무기계약직이라 신분이 안정된 편이지만 한국어 교원 대다수가 기간제 계약직, 그중에서도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계약’을 맺는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이 없다. 이동이 잦다 보니 숙련을 쌓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어 교원의 일터는 법무부의 사회통합 프로그램부터 고용노동부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여성가족부 가족센터와 교육부가 관할하는 시도 교육청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정작 한국어 교원 자격증은 문체부가 발급한다. “다문화 사회의 최전선에 있지만 모든 결정에선 완전히 배제되고 있어요.” 한국어 교원의 노동환경을 해결하는 일이 결국 이주민들의 사회통합과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10월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에 한국어교원지부가 생겼다.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에 이창용씨가 깃발을 들었다. 한국어교원지부장이 된 그는 “혼자이거나 계약직이라도, 대학 밖에 있어도 가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전국에서 한국어 교원 55명이 가입했다. 서로 다른 현장이 연결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한 조합원은 “늘 불안 속에서 살아왔는데 내가 좋아하던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라고 후기를 전했다.

한국어교원지부 단톡방에는 다문화 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부터 한국어 교원으로 살아가는 어려움 등 날것의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 이창용 지부장이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은 이것이다. “뭉치면 바뀐다.” 더는 고립되지 않겠다는 한국어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온라인 노조를 통해 하나로 모여들고 있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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