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발견’한 유럽 [.txt]

1492년 10월, 콜럼버스가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개된 백인의 살육과 약탈, 대량이주와 착취의 흑역사는 알려진 대로다. 그러나 대서양 양안의 역사를 정복자-피정복자,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 구도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다. 유럽 중심의 대탐험 서사는 역사의 또 다른 주역인 ‘인디저너스(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배제하고 대상화한다.
아즈텍 연구 권위자인 역사학자 캐럴라인 도즈 페넉의 ‘야만의 해변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이자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저너스들에게 역사의 정당한 자리를 되찾아주는 책이다. 인디저너스들의 기록과 구전, 유럽인들이 남긴 여행기·보고서·편지·왕의 칙령과 회계장부까지 샅샅이 살펴 16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균형 있게 복원해낸다.
‘신세계’를 만난 것은 유럽의 정복자들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디저너스들도 유럽을 만났다. 콜럼버스의 상륙 이후 100년 동안에만 100만~200만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백인의 노예가 됐는데 대부분 유럽으로 팔려 갔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넌 원주민에 노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외교관, 중재자, 통역사, 선원, 하인, 메스티조(혼혈)와 사생아를 포함한 가족의 일원이기도 했으며, 때론 원주민 전통 제의의 시연을 강요받는 무대 예술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받으려 애쓴 인간이었다. 그들의 눈에 유럽이야말로 지배자와 거지, 풍요와 굶주림, 예의와 극단의 폭력이 공존하는 ‘야만의 해변(책의 원제)’이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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