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정관 스님·조희숙 "미식이 별건가, 장만 잘 쓰면 되지"
미쉐린 3스타 강민구가 꼽는 '한식의 어머니'
천진암서 '한식 공부 모임'으로 10년간 인연
"한국인도 한식 잘 몰라... 장 잘 활용해야"
편집자주
내일은 오늘보다 맛있는 인생, 멋있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기자가 한 달에 한 번, 요즘의 맛과 멋을 찾아 전합니다.
올해 국내 유일의 미쉐린 3스타로 선정된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네 명의 어머니가 있다. 최근 출간한 책 '장(JANG)'의 첫 장에도 이렇게 밝혔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어머니와 장모님, 그리고 한식의 어머니 정관 스님과 조희숙 셰프님 이 네 분의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칩니다."
정관 스님과 조희숙 셰프는 강 셰프뿐 아니라 '셰프들의 셰프'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 스님은 사찰음식 전문가로 유명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출연 이후 그에게 한식을 배우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다. '한식공간' 대표 조희숙 셰프는 전통 한식의 대모. 40년 전 호텔 주방 막내로 음식을 시작한 조 셰프는 신라호텔 등 국내 유수의 5성급 호텔을 거쳐 미국 워싱턴의 한국대사관저 총주방장을 지냈다.
국내 내로라하는 세 명의 셰프가 지난 9일 한자리에 모였다. 셋의 공통분모는 '한식'. 세계적인 한식 열풍에 이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치와 비빔밥, 불고기에 국한됐던 한식은 최근 한국만의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한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장 문화가 2013년 등재된 지 11년 만이다. 한식의 인기에 강 셰프와 정관 스님은 해외에서 먼저 책 '장'과 '정관스님 나의 음식'을 출간했다. 셋을 만나 한식의 가치를 들어봤다.
"손톱이 쏙 들어가게... 나물 삶는 법부터 배워"
셋의 인연은 약 10년 전 한식 공부 모임에서 시작됐다. 정관 스님에게 한식을 배우던 강 셰프가 조 셰프에게 '천진암에 함께 가보자'고 제안했고 '배움에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조 셰프가 흔쾌히 따라나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다. 다른 셰프들과 함께 대개 일주일에 한 번씩 한식을 공부했다. 모임의 이름은 '금바루(발우·鉢盂)'.
베테랑인 강 셰프는 한식의 기본부터 다시 배웠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미국 유명 일식 레스토랑 체인인 '노부'의 바하마 지점 총괄 셰프로 일하다 귀국해 한식 파인다이닝 식당 '밍글스'를 연 지 얼마 안 된 시기. "한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잘 알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니까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강민구)
정관 스님과 조 셰프의 가르침은 달랐다. "나물이 되게 어려운데 배울 데가 없거든요. 부모님한테 배우는 거랑 이 분들한테 배우는 거랑 완전히 달라요. 정관 스님은 나물 삶을 때 '손톱이 여기까지 쏙 들어갈 때까지 삶아라' '건져올려서 손 사이로 물이 살살 흐를 때까지 짜라' 이렇게 가르치세요. (웃음) 그런 거부터 보고 배웠죠."(강민구)
조 셰프에겐 일상 한식과 전통 한식의 차이를 배웠다. 같은 김치찌개여도 집에서 먹는 것과 식당에서 먹는 것은 달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철학. "2004년쯤 신라호텔에서 일할 때 한 프랑스 셰프가 와서 한식은 가정식과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이 구분이 안 돼 있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강 셰프도 전통 한식에서 모던 한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죠."(조희숙)
이들은 서로가 스승이고 제자다. 정관 스님은 "강 셰프가 우리 제자라고 하는데, 그런 거 없다"며 "우리는 서로 배우고 배우는 사이"라고 했다. "강 셰프가 '스님, 우리 레스토랑에 와 봐요' 하길래 어느 날 가봤지. 그랬는데 세상에! 음식을 담는 것부터 다른 거야. 나도 사찰음식을 이렇게 담음새까지 아름답게 해보자라는 생각을 했지."(정관 스님)
'밍글스'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호박선'은 강 셰프가 스님에게 대접하려고 고안해 만든 음식이다. 강 셰프는 "정관 스님이 채식 메뉴의 뮤즈"라고 했다. 옆에서 듣던 조 셰프도 "강 셰프가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접근 방식이 창의적"이라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법도 젊은 강 셰프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집에 간장 3종류는 있어야... 미식이 별건가"
세 사람이 한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장(醬)'이다. "장으로 간을 맞춘 반찬을 밥과 함께 먹는 것이 한식의 기본이자 가장 큰 특징이다."(조희숙) 요리에 쓰는 모든 장을 직접 담그는 정관 스님은 천진암에 있는 간장과 된장 등을 담은 장독만 30개가 넘는다. 제일 오래된 간장은 37년산. 시간과 장소 등 발효 환경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관 스님은 "절을 옮겨다니면서도 장독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강 셰프도 '밍글스' 개점 때부터 간장, 고추장, 된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 트리오' 메뉴를 선보였다. 식당에서는 본인이 직접 담근 장과 명인이 만든 장을 공수해 함께 사용한다.
이들은 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조희숙 셰프는 "장을 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소스류는 어느 나라나 다 짜다"며 "기본 장에 대해 잘 알고 여기에 파생되는 초고추장, 초간장, 맛간장, 조림장 등을 요리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찰에서는 실제로 나물 하나를 무쳐도 수확 시기에 따라 쓰는 장의 종류가 다르다. 시금치를 예로 들면 갓 돋은 여린 잎의 시금치는 간장으로 무치고, 좀 더 자라면 된장, 더 억세지면 고추장을 사용한다. 정관 스님은 "장을 달리 쓰면서 재료가 가진 에너지를 몸에 맞게 순화시키는 것"이라며 "자연의 흐름에 따라, 생명에 따라 요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강 셰프는 "한국 사람들도 장을 어떻게 활용할지 잘 모르는데, 장은 다른 나라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며 "장을 더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정에도 간장이 최소 세 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판 한식간장(국간장)과 양조간장, 그리고 오래된 한식간장이요. 그런데 오래된 간장은 시판 간장이랑 비교하면 많게는 10배 정도 비싸거든요. 아까우니까 조림 요리 같은 데는 쓰지 마시고 간장 자체가 중요한 요리에 써보세요. 콩나물 삶아서 그 간장만 넣고 버무려도 맛있어요. 미식이 뭐 별건가요?"(강민구)
강민구 셰프의 장 바리에이션 양념 세 가지
●라이트 맛간장
※라이트 맛간장은 당분을 가미한 양념간장으로 채소와 해산물 등 비교적 가벼운 단백질 재료와 잘 어울린다.
-재료(1.2㎏ 분량): 양조간장 800g(비율 4), 설탕 200g(1), 물 200g(1)
-만드는 법: 냄비에 간장, 설탕, 물을 넣고 중불로 가열하다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불에서 내려 식힌다. 밀폐용기에 붓고 냉장하면 1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
●쌈장
※한식에서 식사에 곁들여 먹는 소스나 찍어 먹는 용도로 쓰이는 쌈장은 부드러운 단맛과 매운맛에 풍부한 감칠맛이 더해진 양념장이다. 특히 돼지고기와 잘 어울려 삼겹살 수육에 곁들이면 좋다.
-재료(160g 분량): 양조된장 100g(비율 10), 고추장 50g(5), 설탕 10g(1)
-만드는 법: 볼에 된장, 고추장, 설탕을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잘 섞는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하면 3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
●소테 고추장
※이 양념장으로 소테(팬에 소량의 기름을 두르고 높은 온도에서 볶고 굽는 조리방식)나 볶음 요리를 하면 고추장이 재료에 더 잘 코팅되어 캐러멜화되면서 풍미가 아주 좋아진다.
-재료(600g 분량): 고추장 400g(비율 4), 양조간장 100g(1), 설탕 100g(1)
-만드는 법: 볼에 고추장, 간장, 설탕을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잘 섞는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하면 3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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