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기후돌봄 체계 구축 필요하다
대피 못한 거동 불편자들 피해
지역 중심 기후돌봄 구축된다면
국가 지원체계 무너지지 않을 것
직장인이 된 후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매번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핑계를 댄다. 그렇다고 책을 안 사는 건 아니다. 예쁜 표지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사놓은 책들로 책장은 이미 가득 찼다. 그런 와중에도 최근 끝까지 읽은 소설책이 하나 있다. 영국 작가 메건 헌트의 데뷔작 ‘끝, 새로운 시작’이다.

며칠이 몇 달이 되고, 혼란이 계속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세상이 격변하는 상황. 생존이 우선순위로 떠오르며 모든 이를 옥죄어 온다. 주인공이 머물던 임시 보호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량을 노린 약탈자로부터 공격받는다. 그는 또 다른 피난처를 향해 정신없이 떠돈다. 주인공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혼란의 시작 속에서 갓 태어난 첫 아이뿐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책은 해수면 상승 같은 기후재난을 말하고 있으나 정작 기후위기나 지구온난화 같은 단어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이 모든 원인이 기후위기 때문이란 것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20대에 두 명의 아이를 낳은 작가 역시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미래에 출산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여성이 기후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불가피해 보였거든요.”
다른 하나는 지원체계의 문제다.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아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그 역할은 어린 엄마가 맡게 된다. 그런데 그 엄마마저 생존이 위태롭다. 책에서는 전례 없는 기후재난에 무너진 지원체계와 유명무실한 정부의 모습이 묘사됐다. 정부의 안내 문구는 단순명료하다. 우리도 힘드니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아이와 본인의 안전을 챙길 수 있을까? 움직일 수 없거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취약계층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3월 영남권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초고속으로 번진 산불로 31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주민 모두에게 대피령을 발령한 경북 안동을 보자. 한 시민은 화마가 점차 안동 도심에 다가오던 날을 이같이 회상했다. “갑자기 불이 꺼졌고 정전이 됐다. 정전이 됐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게 재난이구나 싶었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 이용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피난을 위해 15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왔다. 그런데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어떻게 해야 됐을까. 손잡이를 붙잡고 1층까지 내려온 후에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지역 중심의 기후돌봄에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최근 기후돌봄이 사회 전반의 체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온마을 돌봄’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기후통합돌봄 계획을 세우고, 예산 편성부터 서비스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주민센터 같은 공공·민간시설 일부를 ‘기후돌봄 거점시설’로 지정하여 기후재난 발생 시 24시간 활용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시도를 안 했을 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후재난을 여러 차례 겪은 한국 사회 역시 이제는 적응하고 대비해야 한다. 소설 ‘끝, 새로운 시작’에 있는 주인공처럼 우리 모두 시대의 선택을 받았다. 일상이 끝나는 시대, 기후재난이 다가오는 시대 말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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