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를 탄생시킨 기요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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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의사, 사형 제도에 반대하던 선각자.
기요탱은 단두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단두대를 발명한 기요탱 의사 역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요탱이란 사람이 단두대에서 죽기는 했지만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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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의사, 사형 제도에 반대하던 선각자. 하지만 18세기 사람들은 사형 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개 처형이 열리는 날은 축제와 같았다. 그래서 기요탱은 차선을 택했다. 처형은 하되 인도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 기요탱은 단두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단두대를 ‘길로틴’이라 부르는 까닭은 기요탱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기요탱은 옛날 프랑스의 처형 방식을 싫어했다. 신분 낮은 사람들은 교수형을 당했다. 남들 보는 앞에서 몸을 꿈틀대며 죽음을 맞았다. 높은 사람은 참수형을 당했는데, 한번에 깨끗하게 목이 잘리지 않아 여러번 도끼질을 당하며 고통받는 일이 많았다. 기요탱은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단번에 목이 잘려 최소한의 고통만 받는 기계를 만들었다.
1792년 4월25일은 처음으로 단두대가 사용된 날이다. 노상강도였던 니콜라 펠티에가 목이 잘렸다. 처형이 기대보다 빨리 끝나 아쉬워하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나. 이 시절에 단두대가 쓰일 일이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이 1789년에 시작했고, 1793년부터 1794년까지 공포 정치 시대였다. 총살로 단두대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단두대를 발명한 기요탱 의사 역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요탱이란 사람이 단두대에서 죽기는 했지만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 공포 정치 시절 기요탱 역시 의심을 받은 일은 사실이다. 한때 감옥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뒤 공포 정치가 몰락했고, 공포 정치를 주도하던 정치인들이 도리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아이러니한 일. 기요탱은 풀려나 천수를 누렸다.
기요탱은 1805년부터는 천연두 백신을 프랑스에 도입하는 일에 앞장섰다. 말년까지 사람을 살리려 노력한 셈. 프랑스 정부는 1939년까지 공개 처형을 했고, 1977년까지 단두대를 사용했다. 1981년에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 유럽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독재 국가인 벨라루스 하나 남았다. 한국은 1997년 이후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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