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꽉 끌어안고 ‘반이재명 빅텐트’라니 [아침햇발]

황준범 기자 2025. 4. 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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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1차 컷오프를 통과한 김문수(왼쪽부터), 안철수, 한동훈, 홍준표 후보. 한겨레 자료사진

황준범 | 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자폭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선 국민의힘이 6·3 조기 대선에서 그래도 이겨보겠다며 도모하는 구상은, 역시나 ‘반이재명 빅텐트’다. 경선을 통해 당 대선 후보를 뽑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단일화한 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까지 끌어안아 이재명 당선을 저지하는 대연합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김문수, 안철수, 한동훈, 홍준표 등 2차 경선에 오른 네 후보 모두 ‘반명 빅텐트’에 한목소리다. 그 첫 단계인 한덕수 대행과의 단일화에 선을 그어온 한·홍 후보도 기존 태도를 버리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대행으로선 출마 문턱이 낮아진 셈이다.

빅텐트는 선거 승리를 위해 이념·정책 등의 차이는 미뤄두고 유력한 공동의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하나로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1997년 디제이피(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22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유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빅텐트는 그러나 이들 전례에서도 보듯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세력 간 철학과 인적 구성, 지지 기반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장 40일 뒤 치러지는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써볼 유일한 전략이 ‘반명 빅텐트’뿐이라는 점은 현실적으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 구상은 성공할 수 없다.

첫째, 태생적 명분 부족이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일으켜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받음에 따라 치러지는 대통령 궐위 선거다. 내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아무 일 없던 듯이 다시 정권을 잡겠다며 대선 판을 흔들어보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짓이다. 반명 빅텐트는 이 근원적 명분 부족을 은폐하려는 가림막이자, 내란 책임을 회피하려는 우산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한덕수 대행과 국민의힘이 손잡고 대선에 참여한다는 것은 국민 모독이다. 내란 세력의 기득권 연장 시도이기 때문이다. 한 대행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2인자다. 그는 탄핵심판 국면에서 헌법재판소 9인 체제 완성을 방해하다가, 윤석열이 파면되자 자신의 말까지 뒤집어가며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 2명을 지명해 ‘내란 알박기’를 시도한 인물이다. 공정한 대선 관리 등 국정 공백을 책임져야 할 권한대행이 직을 던지고 선수로 뛰어드는 것은 자기 부정이고 무책임이다.

셋째, 이번 대선의 성격은 명확하다. 국민들이 ‘정권 교체’와 ‘이재명 저지’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는 여론조사 결과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윤석열 계엄이 국민 삶과 국가 경제·안보에 입힌 막대한 피해와 스트레스를 ‘이재명 혐오’라는 협소한 깃발 하나만으로 덮을 수는 없다.

넷째, 빅텐트를 치려면 계엄·탄핵에 대한 국민의힘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기득권 포기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게 없다. 결정적 맹점이다. 빅텐트가 성사되려면, 덩치 큰 쪽에서 지분을 내려놓고 벌판으로 나와야 한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여당 역할을 제대로 못 해 조기 대선을 초래한 원죄 정당이다. 윤석열의 국정 폭주를 제어하지 못했고, 내란을 옹호하고 극우 세력에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 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처절한 사과·반성과 보수 재건 논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전환의 계기가 됐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국민들은 내일을 바라보는데 국민의힘은 아직도 찬탄·반탄 논란 중이다. 이런 상태로 국민의힘이 말하고 있는 빅텐트는 무엇인가. 국민의힘의 관심은 대선 승리보다는 당 주도권이라고 당 사람들은 말한다. 대선 뒤 이어질 당 지도부 재편과 지방선거(2026년) 공천 등을 염두에 둔 내부 전초전이라는 것이다. 당 주류였던 친윤계로서는 본선에서 이재명을 막아내는 것보다, 경선에서 탄핵 찬성파인 한동훈을 주저앉히는 게 급선무다. 한덕수 차출론이나 반명 빅텐트 주장이 친윤계에서 적극 쏟아져 나오는 게 그런 맥락에서다. 비윤계는 그들대로 주류 교체를 꿈꾸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당 지위는 놓쳤어도 108석 원내 2당이라는 거대한 기와집이다. 그 기와집을 허물기는커녕 꽉 끌어안은 채 ‘이재명 싫은 사람 다 들어오라’고 외치는 게 지금 국민의힘이다. 내란 옹호, 탄핵 반대 세력은 빅텐트의 주역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변화·쇄신은 없이 그저 ‘반명’ 깃발 아래 모이자는 주장은 빅텐트가 아니라, 기득권 유지용 처마 확장에 불과하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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