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존재감 오히려 키워준 우원식…"출마 명분 만들어줬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했다. 6·3 대통령 선거 출마설이 나온 뒤 첫 국회 방문에서 한 권한대행은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원식 국회의장의 질타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고성 항의가 오히려 그의 출마 명분을 쌓아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국회를 찾아 12조2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정부 추경안의 처리를 위한 협조를 촉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회 시정연설은 1979년 최규하 전 대통령 권한대행 이후 46년 만이다.
대선 출마설이 나도는 한 권한대행이 국회 로텐더홀에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야4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졸속매국 관세협상 즉각 중단하라"며 항의했다. 이들은 '민생 추경 확대' '매국 협상 중단' 등 피켓을 들고 규탄 시위를 벌였다. 한 권한대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 권한대행이 시정연설을 위해 연단으로 이동하자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4당 일부 의원들은 "내란대행 사퇴하라"고 소리치며 차례로 퇴장했다. 일부 야4당 의원들은 '매국협상 중단'이라는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한 권한대행의 시정연설에 침묵시위로 대응할 것을 권고했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국회를 무시합니까" "사퇴해!"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조용히 하라"고 맞서면서 소란이 이어졌다. 고민정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도 한 권한대행 연설 도중 항의의 표시로 자리를 떴다.
한 권한대행은 고성과 소란이 이어지는 속에서도 지체없이 곧바로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이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에도 "사퇴하라"는 야당의 항의가 계속됐지만 흔들림 없이 발언을 이어가자 소란은 점차 가라앉았다.
한 권한대행이 "우리가 그동안 한마음으로 수많은 위기를 함께 극복해온 것처럼, 이번에도 서로 신뢰하며 협력할 때 우리 앞에 높인 난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로부터 박수가 터져나왔다.

연설을 마치고 한 권한대행이 90도로 인사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박수를 보냈다. 야당 의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고, 일부 퇴장했던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들어왔다.
우 의장은 한 권한대행에게 "잠시 자리에 앉아 계시라"고 한 뒤 "국회의장으로서 권한대행께 한말씀 드릴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고성으로 항의하며 한 권한대행을 옹호했다.
우 의장은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이미 확인됐듯이 대통령과 권한대행의 권한이 동일하다는 것은 헌법의 위배되는 발상"이라며 "권한대행께서는 대정부질문 국회 출석·답변과 상설특검 추천 의뢰 등 해야 할 일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별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연단 앞으로 나와 우 의장의 발언에 삿대질하며 항의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연단 앞으로 나가 가세하며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러한 소란 가운데서도 한 권한대행은 우 의장의 요청대로 자리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우 의장의 발언을 경청했다. 우 의장 발언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우 의장이 다음 안건을 상정하자 한 권한대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을 떠났다.
한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생 많으셨다"고만 답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우 의장이 이런 발언을 할 것을 이날 국회에 도착한 뒤 전달받고 참모들에게 "우 의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면 그냥 하시라고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이날 한 권한대행에 대한 야권과 우 의장의 비판, 국민의힘 의원들의 엄호가 오히려 한 권한대행의 존재감을 키워줬단 분석이 나왔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침묵'으로 대응키로 한 것은 굳이 한 권한대행을 띄워주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이에 실패했단 것이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민주당에서 '한덕수 재탄핵'이 거론됐는데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시위를 종용한 것은 대선 출마의 명분을 쌓아줄까 두려워서"라며 "그런데 우 의장이 견제구를 던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정치적 주목도를 더 높여줬다. 한 대행이 우 의장의 다소 불쾌한 발언을 겸손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한 권한대행에게 정치적으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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