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로’가 전부인양 다 잡아먹혀”…140분간 흐르는 라벨의 삶과 예술
탄생 150돌 라벨 전기영화

클래식 음악을 잘 몰라도 이 음악을 모르긴 어렵다. 영화와 광고, 온갖 예능프로그램과 피겨스케이팅 배경 음악으로도 쓰여 누구에게나 친숙한 곡이기 때문이다. 지구 어디에선가 15분 간격으로 연주된다는 곡, 모리스 라벨(1875~1937)의 관현악곡 ‘볼레로’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은 올해 탄생 150돌을 맞은 라벨의 이채로운 삶과 예술을 담아낸다.
영화는 ‘볼레로’가 만들어진 과정을 세밀하게 조명하는데, 시작과 마지막에 이 곡이 흐른다. 러시아 발레리나 이다 루빈스타인은 1928년 라벨에게 ‘에로틱한 발레곡’을 위촉한다. ‘카르멘’ 같은 스페인풍이면 좋겠다는 주문도 덧붙인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던 라벨은 스페인 작곡가 알베니스의 ‘이베리아’ 편곡에 착수했는데, 저작권 문제로 악보를 휴지통에 넣어야 했다. “쥐덫에 갇힌” 것처럼 압박감에 시달리던 라벨은 시간에 쫓기다 마침내 단 2주 만에 곡을 완성한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을 ‘스위스 시계장인’이라고 평했다. 그 정도로 라벨이 정교한 곡들을 썼다는 얘긴데, ‘볼레로’는 이런 경향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1분짜리 선율을 17차례나 반복한다. 온갖 악기들이 차례로 합류하다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묘한 관능미를 뿜어낸다. 영화에서 라벨은 “기계에 대한 은유, 현대에 대한 찬사로 작곡한 작품”이라고 회고한다. 라벨이 곡을 위촉받는 장소로 기계음이 규칙적인 리듬을 반복하는 공장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발적인 춤과 함께 연주된 이 곡을 듣고 ‘매춘 쇼’를 떠올린 라벨은 기겁한다. “그 노래가 내 다른 곡들을 다 잡아먹잖아. 내 작품이 꼭 그것뿐인 것처럼 말이야.” 영화 속에서 라벨은 이렇게 탄식하는데, 지금도 라벨 하면 이 곡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영화는 시간순으로 흐르지 않고 라벨의 감정과 기억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로마 대상(Prix de Rome)’ 수상 실패와 1차대전 참전, 어머니의 죽음, 뮤즈 ‘미시아 세르’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등 시련과 좌절에 집중한다. 30살까지 5차례나 고배를 마신 ‘로마 대상(Prix de Rome)’은 그의 자존심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낸다. 영화 속 라벨은 예술에 대한 갈망 속에 다소 강박적 인물로 그려진다.
2시간 내내 라벨의 명곡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볼레로’ 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라 발스’, ‘밤의 가스파르’, 피아노협주곡과 피아노3중주, 현악4중주 등 라벨의 곡들이 흘러나온다. 피아노 연주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로 타로가 맡았다. 조지 거슈윈의 ‘더 맨 아이 러브’ 등 재즈곡들도 나오는데, 라벨은 재즈풍 작품도 여럿 썼다. 모차르트를 다룬 ‘아마데우스’, 베토벤을 그린 ‘불멸의 여인’처럼 ‘음악이 주연인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감독은 2009년 영화 ‘코코 샤넬’을 만든 안 퐁텐. 젊은 시절의 알랭 드롱을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라파엘 페르소나즈가 라벨을 연기했다. 10kg을 감량하며, 피아노와 지휘를 배울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라벨이 실제로 살았던 집에서 촬영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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