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비 배인의 커밍아웃, K팝이 외면해 온 판타지의 균열 [K-POP 리포트]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내가 LGBT(성소수자) 커뮤니티 일원으로 속해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지난 22일, K팝 보이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배인이 미국 LA 월드투어 'JUST ODD' 공연 도중 뱉은 이 한마디는, 개인의 고백을 넘어 K팝 산업의 깊숙한 지층을 뒤흔든 발언이었다.
보이그룹의 멤버가, 그것도 활동 중인 현직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성소수자임을 자발적으로 밝힌 일은 K팝 역사상 전례가 없다. 앞서 하이브의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의 멤버 라라가 팬 플랫폼을 통해 성소수자임을 고백한 바 있지만, 한국이 터전인 K팝 그룹 현직 멤버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K팝 산업은 오랜 시간 '연애 금지'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팬과의 관계를 '연인 환상'으로 설정하고, 팬미팅·팬플랫폼을 통해 그 환상을 섬세하게 관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이 안에서 아티스트가 자신의 연애, 성적 지향,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드러낸다는 건 산업의 메커니즘을 흔드는 일이 된다.

배인의 커밍아웃은 이처럼 보수적인 문법 위에서 이뤄진 파격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존재를 정직하게 드러냈고, 그 진정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팀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가 던진 말 한마디는 저스트비라는 그룹 전체의 이미지, 활동, 팬덤의 결속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서사가 자칫 집단의 리스크로 소비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는 소속사 블루닷엔터테인먼트의 대응으로도 느낄 수 있다. 배인의 커밍아웃 이후 블루닷엔터테인먼트은 "별다른 입장이 없다"며 침묵을 선택했다. 회사 차원의 지지 성명도, 아티스트의 선택을 보호하는 공식 언급도 없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응한 것이다.
이러한 침묵은 K팝 산업의 후진적인 체질을 드러낸다. 나아가 팀과 아티스트 간의 균형을 책임져야 할 기획사의 역할에도 물음표를 남긴다. 소속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룹 전체의 활동 방향을 조율할 책임 또한 기획사에 있다.

배인의 고백은 용기의 서사임과 동시에, 복잡한 산업 구조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선언이기도 하다. 때문에 팬덤 안에서는 응원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 중심의 해외 팬 커뮤니티에선 '더욱 존경스럽다'는 공개 지지와 함께 '#ProudOfBAIN' 같은 해시태그까지 생성하기도 했지만, 국내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부정적 목소리도 높다.
이는 K팝 산업이 진정성과 상품성 사이에서 겪는 구조적 충돌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배인의 말은 사실상 K팝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먼저 던진 셈이다. 우리는 과연 아티스트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변화는 단순한 이미지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재구조화를 요구한다. 기획사는 아티스트 개인과 팀 전체를 동시에 존중하는 균형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하고, 팬덤은 소유가 아닌 연대의 감각으로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성숙함을 가져야 한다. 커밍아웃은 단지 개인의 용기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가 진정한 변화를 결정짓는다.
K팝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한 명의 용기를 외면하며 판타지를 유지할 것인가, 혹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다양성과 진정성을 품은 산업으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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