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 나이 되어보니 부모의 마음을 알겠어요[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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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아, 일어나 봐."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삵을 보고 내게 부엌에 가서 부지깽이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그제야 어머니는 마당으로 뛰쳐나가 닭장 문을 살피며 뽑힌 털을 내게 보여주셨다.
으스스한 기분으로 산속 깊이 조그마한 동굴 안으로 어머니가 내 한쪽 손을 붙잡고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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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아, 일어나 봐.”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파동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머니다.
“밖에 삵이 왔다!!! 닭장에 닭을 잡아먹으러 왔나 봐,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
하필 아버지가 출타 중인 이날 삵이 나타난 것이다. 40대 전후였던 어머니는 무서움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안방 창호지 문만 열었다 닫았다 반복이었다.
슬금슬금 고양이처럼 걸어가 닭장 문을 흔들던 삵이 “때 이∼ 때 이∼” 소리 지르는 어머니 쪽을 휙∼하고 돌려다 본다.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삵을 보고 내게 부엌에 가서 부지깽이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냅다 한걸음에 부지깽이를 가져와 어머니에게 던지듯 전해줬다. 가져온 부지깽이로 마룻바닥을 몇 번이나 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쫓아낸다.
“꼬끼오… 꼬꼬꼬… 꼬끼오… 꼬꼬꼬∼”
낚아채듯 닭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삵이 사라져 갔다. 그제야 어머니는 마당으로 뛰쳐나가 닭장 문을 살피며 뽑힌 털을 내게 보여주셨다.
“닭 한 마리 잡아갔다!!!”
어린 나는 소스라치는 무서움에 한참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다. 곯아떨어져 자고 있는 나를 또 누군가 흔들어 깨운다. 피곤함에 젖은 눈을 떠보니 역시 또 어머니다. 아침 7시 30분이다.
“왜?”
“닭 찾으러 가야지.”
왜 꼭 나만 깨우는지 툴툴거리며 뒷산 행아네 산으로 따라나섰다. 닭이 없어질 때마다 항상 가는 코스였다. 으스스한 기분으로 산속 깊이 조그마한 동굴 안으로 어머니가 내 한쪽 손을 붙잡고 들어가셨다.
“닭이다!!”
여기저기 털이 뽑힌 닭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닭 모가지를 단숨에 들어 올려 도망치듯 집으로 내려왔다. 닭이 삵에게 잡히는 날이면 우리 집 아침은 항상 뜨거운 물을 끓여 맛있는 닭볶음탕을 해먹는 날이었다.
삵….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삵은 늑대와 같이 무서운 존재였다. 또한 삵은 귀신이나 요술 부리는 늑대처럼 생긴 줄 알았다.
나중에 커서 삵의 사진을 보니 고양이랑 비슷한 과의 동물이었다. 우리나라에 멸종 위기라는 삵이라는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무서웠던 어느 추운 겨울날을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옛적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만큼 큰 걱정을 하고 살았다. 산골과 어촌 즈음에 살림을 꾸리고 살아도 늘 의식주의 부족한 부재로 온몸을 아끼지 않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살아도 온 식구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어서 부모의 눈에 눈물 마를 일 없는 그때에도 어린 나는 너무 철이 없어 부모의 애끓는 마음을 몰랐던 것 같다.
그 시절 늘 장사하러 나가셔서 1년에 한 번이나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는 늘 8형제의 가장으로 사셨다. 이제 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허리를 세우고 나의 내면을 바라보니 나는 내 어머니보다도 성숙하지 못하고 두 명의 내 아이조차도 바로 세우기에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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