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 찾아 인생의 퍼즐 맞추고 싶어요” 해외 입양인이 헌재까지 간 이유

김지은 기자 2025. 4. 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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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사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공동취재단

“해외 입양인들에게 친부모를 찾는다는 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고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맞춰 나가는 과정입니다. 단지 생물학적 연결이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감, 삶의 맥락을 찾는 일이기도 해요.”

지난 17일 서울행정법원은 친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입양인이 친부모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한 입양특례법 조항(36조 2·3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그동안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국내 기관의 문을 두드리며 요청했지만 공개되지 않던 친부모의 정보에 대한 법률 규정의 위헌성에 대해 헌재가 처음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사건 당사자는 국외입양인 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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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덴마크로 입양된 ㄱ씨가 한국의 입양기관을 통해 본격적으로 친부모 찾기에 나선 것은 2021년이었다. 생후 8주께 입양이 진행됐던 만큼 ㄱ씨에게 친부모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전혀 없다. ㄱ씨는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친부모를 찾겠다는 결정은 갑자기 내린 게 아니라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온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ㄱ씨가 맞닥뜨린 것은 불투명한 한국의 입양 시스템이었다. 자신의 입양을 주관한 기관과 아동권리보장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어디도 ㄱ씨에게 친부모의 인적 사항 정보를 내어주지 않았다. ㄱ씨의 친부가 사망해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ㄱ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많은 문이 닫혀 있었다고 느꼈다. 한국의 입양 시스템에서 해외입양인이 정보를 찾아나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건 입양특례법 36조 2·3항이다. 이 조항은 입양인이 자신의 입양정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친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때 연락이 닿지 않아 친부모의 의사 확인이 되지 않으면 입양인들은 부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다. ㄱ씨의 경우 친부가 사망해 동의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고 아동권리보장원은 끝까지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았다.

정보공개 청구가 계속 불발되자, ㄱ씨는 ‘입양인 알 권리 법률대리인단’과 함께 지난해 3월 소송을 냈다. 대리인단 소속인 김선휴 변호사는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을 때 아동권리보장원은 친부모 쪽에 3번 통지해 답이 없으면 절차를 종결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 입양인들이 지치는 일이 반복돼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소송 과정에서 이런 관행이 잘못됐음을 일부 인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생부모의 인적사항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대리인단은 지난해 11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약 5개월 만에 ㄱ씨 쪽 요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제청 결정문에서 “통계적으로 친부모가 정보공개에 동의하는 경우가 거부하는 경우보다 서너 배가량 많은데, 친부모의 동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까지 부동의로 간주해 공개하지 않는 것은 사생활 보호에 치우쳐 입양인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한다”고 판단했다.

ㄱ씨는 “헌재가 이 사건을 심리한다고 했을 때, 이 문제가 단지 저 개인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법적·사회적 차원에서 의미 있는 문제라고 느껴졌다”며 “이 사건의 핵심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 권리’이며, 다른 입양인들에게도 자신의 배경과 정체성을 이해할 기회를 주는 기본적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리인단은 이번 소송에서 법원이 입양인들의 친부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천부적이고 본질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점에 주목했다. 김선휴 변호사는 “해외에서 시간과 노력을 엄청나게 들여 한국에 온 해외입양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매우 적다. 나에 대한 정보인데도 알지 못하는 무력감으로 슬퍼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입양인 분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이고, 최종적으로 법 개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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