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교제폭력 입법 공백으로 피해자 보호 안 돼…분리조치 근거 필요”

김효실 기자 2025. 4. 24. 09: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호주 국제 세미나서 제도 개선 촉구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한겨레 자료사진

교제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경찰 내부에서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Intimate Partner Violence)’을 규율하는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있는데, 두 법률로 보호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개명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장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참수리홀에서 열린 한국-호주 국제 세미나 ‘교제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더 안전하게 보호할 것인가: 쟁점과 과제’에서 교제폭력 현장에서의 경찰 대응 현황 및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제했다.

여 과장은 먼저 교제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 노력을 소개했다. 경찰은 2016년부터 112시스템에 교제폭력(옛 데이트폭력) 신고 코드를 신설하고, 2021년엔 연인 관계 범위에 이성뿐 아니라 동성도 포함시켰다. 2023년부터는 교제폭력 피해자의 경우에도 가정폭력·스토킹처벌법상 피해자 보호조치를 활용하고 있다.

여 과장은 “2월7~13일 교제폭력으로 접수된 112 신고 총 1166건의 최종 처리 현황을 살펴보니, 가정폭력과 스토킹 사건으로 분류해 보호조치를 할 수 있었던 18건 외에는 단 한 건도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교제폭력을) 규율할 수 있는 마땅한 제도가 없다는 점에서 경찰 대응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가정폭력·스토킹처벌법상 보호조치를 활용하고자 하지만 사실관계 파악 뒤 두 법으로 포섭할 수 없는 사건이 많다는 의미다.

그는 현장의 어려움을 토대로 도출한 개선 방안으로 “가정폭력처럼 (가해자) 접근금지 등 분리조치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양가적 감정, 보복 우려 등으로 처벌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담당 경찰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 과장은 또한 “현재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으로 얻을 수 있는 (교제폭력 관련) 통계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면서 “(교제폭력) 범죄 경향성을 확인하고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려면 보다 세분화되고 정교화된 통계관리가 필요하기에 입법 전이라도 법무부, 대검찰청 등 유관 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통해 개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참수리홀에서 한국-호주 국제 세미나 ‘교제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더 안전하게 보호할 것인가: 쟁점과 과제’가 열렸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한민경 경찰대학 교수도 이 자리에서 ‘교제폭력 반복 발생 패턴 분석’ 발표를 통해 “전·현 연인 관계(내연 관계 포함)의 경우 부부(사실혼 포함) 관계보다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반복해서 발생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실증 연구로 확인된다”며 “가정폭력처벌법 등으로는 교제폭력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교제폭력에 대한 법·제도적 대응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2023년 1월과 7월 두 달 동안 과거 또는 현재 배우자와 연인 등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문 377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또한 “연인 등 친밀한 파트너 폭력에서 범행이 반복되는 사건의 80%가 최초 범행으로부터 한달(30일) 안에 발생하며, 범행이 반복될수록 재범까지의 시간이 급격히 단축된다. 2차 범행 이후 계획 범행의 비율이 높아지고 시간 간격 또한 짧아지기 때문에 (경찰의) 초기 개입이 한층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조치까지 받고도 희생되는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 교수는 “연구 결과 경찰 보호조치가 취해진 경우 폭력의 반복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피해자는 현재 조치보다 그 수준이 상향된 집중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