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 넘어지고 트럼프에 얻어맞은 한국 경제
윤석열은 파면했지만 한국을 둘러싼 대외 경제 환경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4월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경제동향’을 발표하며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내수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나라 밖으로 향하는 수출도 증가세가 둔화되는 흐름이 여전한데, 트럼프발 미국 관세 폭풍이 통상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틀 뒤인 4월9일, 미국의 상호 관세 발효로 인해 환율이 요동쳤다. 이날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달러당 1484.1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준다. 다만 환율로 표현되는 통화가치는 상대적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에 연초만 해도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 흐름으로 인해 고환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환율 움직임은 달러 강세만 가지고 설명하기 어렵다. ‘달러의 가치’를 표현하는 ‘달러 인덱스(DXY)’라는 지표가 있다. 유로화, 일본 엔화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측정한 결과다. 올해 1월13일만 해도 달러 인덱스는 109.96을 기록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통상 전쟁 점화로 인해 달러화의 상대적 가치는 점차 떨어졌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본 결과다.
상호 관세를 발효한 4월9일, 달러 인덱스는 102.9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동안 원·달러 환율과 달러 인덱스는 비슷하게 움직인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4월9일에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달러화가 가치 하락을 겪고 있지만, 원화는 그보다 더 크게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100엔당 850원대까지 하락했던 원·엔 환율이 4월8일 1018.53원까지 오른 것도 유독 ‘원화만 약세’인 현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환율이 드러낸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원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은 한국 경제의 내우외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원화 가치 하락은 국내적 요인과 국외적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당면한 위기는 나라 밖에서 불어오는 트럼프발 관세 폭풍이다. 미국이 발효한 한국의 상호 관세율은 25%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4월9일(현지 시각) 중국을 제외한 75개국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겠다고 발표해 당장의 충격은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기본 관세 10%만 부과), 여전히 트럼프가 쏘아 올린 통상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한국 수출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전 세계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거래량 전반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데다, 중국에 대해서만은 관세를 유예하지 않고 125%까지 올렸기 때문에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겹겹이 악재다.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위안화 동조 현상’이다. 원화는 국제무대에서 중국 위안화와 상관관계가 큰 통화로 분류된다. 우리 경제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그렇게 믿고 거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에 나설 경우다. 중국이 미국에 파는 물건 하나가 10달러라고 가정해보자.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125%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기존 중국산 제품은 약 22.5달러로 판매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1달러당 7위안이던 위안·달러 환율이 8위안으로 오를 경우, 달러화로 표시된 물건 가격은 10달러에서 8.75달러로 떨어진다. 관세를 매긴 최종 가격도 약 19.69달러로 내려간다(물론 이는 단순화한 계산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중국이 위안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관세 효과를 일부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금융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4월9일 중국 인민은행은 1달러당 고시 환율을 7.2066위안으로 발표해 ‘위안화 절하’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달러당 7.2위안은 외환시장에서 ‘중국 당국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던 수치다. 만약 우려대로 위안화 가치 하락이 이어질 경우, 이와 ‘동조하고 있는 통화’로 평가받는 원화의 가치 하락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이와 같은 환율 전쟁으로 대응할 경우, 관세를 더 올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중국은 4월10일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84%까지 올린 가운데 글로벌 통상 전쟁을 ‘환율 전쟁’으로 확전시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위기가 단순히 우리만 잘한다고 풀리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트럼프의 존재감 때문에 통상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내부적인 문제 역시 위중하기는 마찬가지다. 통상 전쟁 전부터 유독 전 세계 통화 가운데 원화의 약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과 2025년 1월 사이 ‘달러화 대비 절하율’은 일본 엔화(26.8%), 노르웨이 크로네화(22.2%)에 이어 원화(17.9%)가 3위를 기록했다. 트럼프 취임 전까지도 유독 한국 원화에 대한 평가가 더 나빴다는 의미다.
이 보고서는 원화 약세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반) 취약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12·3 쿠데타까지 발생했다. 비록 윤석열 파면으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저성장 고착화라는 문제가 남는다.
2월25일, 한국은행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는 대내적 요인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제심리가 위축되면서 내수의 하방 압력이 증대되었다”라고 지적한다. 쿠데타로 얼어붙은 경제심리는 윤석열이 파면된다고 해서 곧바로 풀리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에나 경제심리가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2·3 쿠데타 이전만 해도 한국은행은 2024년 4분기 성장률을 0.5%로 예상했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내수 침체가 심화됨에 따라 이 기간(4분기) 동안의 실질 성장률이 0.1%로 밑돌았고 그 여파는 올해 상반기 동안 완만하게 완화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진단한다.
실질 경제성장률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항목인 건설투자는 더욱 암담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투자는 2.7% 감소했고, 올해도 2.8%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PF 부실 여파뿐만 아니라 지방 아파트 대규모 미분양 사태처럼 위험 요인이 여전한 상황에서 건설·토목 기업의 적극적인 사업이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충북 지역 최대 건설사인 대흥건설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올해에만 중견 건설사 9곳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고 건설투자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위험이 크다. 개별 시행·시공사 입장에서 사업성을 확보해야 투자를 벌이는데, 이들의 사업 시도를 늘리기 위해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는 데 걸림돌이 된다. 딜레마 관계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금리를 낮출 경우, 동시에 낮은 금리가 가계부채를 늘려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 같은 금융안정과 경기부양 사이의 딜레마를 자주 언급했다. 4월3일 ‘한국은행-금융연구원 공동 정책 컨퍼런스’ 대담에서도 이 총재의 이 같은 인식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날 이 총재는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금리를 낮추면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가거나 해외 주식으로 가는 등의 문제가 생겨 통화정책을 하기 굉장히 어려워진다”라며 통화정책(금리 조정)의 한계를 언급했다.
대선 앞두고 거세지는 추경 요구
최근 트럼프의 관세 폭탄 때문에 미국의 금리인하가 지체된다는 점도 우리 통화 당국의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어렵게 만든다. 트럼프는 관세를 부과함과 동시에 금리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관세가 부과될 경우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4월5일(현지 시각)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실업률 상승 위험도 높다”라고 말했다. 관세로 인해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함께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인상은 생산비용을 증가시키고 물가를 끌어올린다. 통상 전쟁으로 인해 무역 거래량이 줄고 실업이 늘어날 경우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하하고 싶어도 과감하게 내리기 어렵다. 미국의 현 기준금리는 최대 4.5%, 한국은 2.75%로 1.75%포인트 금리차를 보이는데, 금리를 선제적으로 내릴 경우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
나라 밖에서는 통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나라 안에서는 소비도, 건설투자도 늘릴 길이 막막하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려서 돈을 풀기엔 가계부채를 비롯한 금융안정 문제가 걸림돌이고, 자칫 환율을 더 자극할 위험도 있다.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계든 기업이든, 자연스럽게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4월8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조원 규모 추경안을 곧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충격에 따른 피해 회복을 위한 집행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부의 추경 규모가 너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4월9일 금융소비자연대회의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 앞에 모여 “30조원 이상 추경이 편성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추경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증액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차기 정부의 2차 추경’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기 대선의 핵심 어젠다는 여전히 ‘내전 종식’이다. 그러나 내우외환에 빠진 한국 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 마련 역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다급하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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